한국축구의 운명이 오랜 내전에 신음하며 축구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 ‘복병’ 시리아의 손에 달렸다.
한국축구 대표팀은 오는 28일 오후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시리아를 불러들여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A조 7차전 홈경기를 치른다. 시리아는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95위(한국은 40위)의 약체. 월드컵 본선은 한 번도 나가본 적 없고 아시안컵에서조차 조별리그 통과 경험이 없다. 평소 같으면 한국의 대승 전망이 당연한 상대.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중국과의 6차전에서 중국 원정 사상 첫 패배(0대1)의 불명예를 떠안은 한국은 충격 패 이후 불과 5일 만에 다시 그라운드에 선다. 극적인 경기력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시리아는 이번 최종예선 들어 2승2무2패(2득점 2실점·승점 8)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본선 직행 마지노선인 2위(한국)와는 2점, 대륙 간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걸린 3위(우즈베키스탄)와는 1점 차다. 한국을 누르면 시리아는 단숨에 조 2위로 올라서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눈앞에 둘 수도 있다. 한국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시리아에 지면 3경기를 남기고 4위로 떨어져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 멀어지고 만다.
시리아를 응원하는 자국 팬들의 목소리는 지난 23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전 승리 이후 부쩍 높아지고 있다. 시리아는 불안한 국내 정세 탓에 홈경기도 중립지역인 말레이시아에서 치렀다. 우즈베키스탄의 맹폭을 끈질기게 막아낸 시리아는 후반 추가시간 페널티킥 골로 1대0 승리의 드라마를 썼다. 오마르 카르빈이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도 파넨카킥(골키퍼 타이밍을 뺏기 위해 느리게 차는 슛)을 시도하는 강심장을 뽐냈다.
7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50만명 가까운 사망자와 약 500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데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점령지라는 오명까지 쓴 시리아에게 축구 대표팀은 유일한 희망과도 같다. 아이만 하킴 시리아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 이후 기자회견에서 “오늘의 승리를 시리아 국민에게 바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시리아 선수들은 승리수당으로 1인당 1,000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년 치 연봉과 맞먹는 돈이다. 한국전 승리에도 그만한 수당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지난해 9월 말레이시아에서 치른 시리아와의 최종예선 2차전에서 득점 없이 비겼다. 작정하고 드러누워 시간을 끄는 중동 특유의 ‘침대축구’에 끝내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시리아의 전략은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월드컵에 대한 열망과 자신감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라 역습의 빈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이 내밀 비장의 카드는 역시 손흥민(토트넘)이다. 경고누적으로 중국전에 결장했던 손흥민은 26일까지 정상적으로 훈련을 소화하며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시리아와의 2차전 원정에도 소속팀의 요청으로 뛰지 못했던 손흥민이다. 4-2-3-1 포메이션과 비슷한 선수들만 고집하는 안이한 전술로 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왼쪽 측면의 손흥민과 저돌적인 돌파가 강점인 황희찬(잘츠부르크)을 앞세워 경질론을 잠재우겠다는 계획이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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