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공룡이다…소 몇 마리 먹으라고 던져준들 공룡은 배가 차지 않는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컨트롤 타워였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당시 한 회의석 상에서 한 말이다. 강남권 재건축 해법으로 ‘철저한 개발이익 환수를 전제로 한 용적률 확대’를 내세운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의 입장을 반박하며 공급 확대 보다는 수요 억제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김 전 실장의 말에서 드러나듯 참여정부 5년간 계속된 ‘부동산과의 전쟁’은 줄곧 강남을 정조준했었다. 정부 당국자들은 공공연하게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하면 낭패를 볼 것”이라고 공언했을 정도다.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는 이 같은 정책적 배경 속에 탄생했다. 이 제도는 재건축을 통해 얻는 이익이 주변 평균 시세와 비교해 1인당 3,000만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에 대해 최고 50%를 세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2006년 5월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법제화돼 시행됐다. 법안 시행을 앞두고 “불로소득 차단에 회군은 없다”고 말한 김 전 실장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당시 이 법 제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결연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제정 당시 ‘헌법에 버금가는 지속적 대책을 만들겠다’던 참여정부의 장담과는 달리 현재 모양새는 말이 아니다. 법 제정 7년 만인 2013년 정부가 부동산거래 위축 우려를 이유로 두 차례 적용을 유예하면서 4년간 시장에서 사실상 잊혀져 왔던게 사실이다.
더 민망한 것은 제도가 시행된 7년간이다. 시행 유예 이전인 2012년까지 이 법의 적용을 받아 세금을 낸 단지는 단지 고작 5곳, 이마저도 모두 이름조차 낯선 소규모 연립들 뿐이다. 그나마 가장 규모가 큰 곳이 68가구 규모의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D연립이며, 나머지는 15~31가구짜리 초미니 재건축 단지들이다. 5개 단지를 합친 조합원 수는 고작 163명, 부과된 세금은 22억400만원에 불과하다. 그사이 내로라 하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이 법을 피해 ‘무사히’ 재건축을 마쳤다. 때를 잘못 만나 세금을 낸 5개 연립 주민들 입장에서는 “뭐 이런 법이 다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릴 법한 일이다.
올 연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유예 종료를 앞두고 시장의 논란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사유재산권 침해와 이중과세, 재개발과의 형평성 등을 들어 ‘유예’를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불로소득 환수, 재건축의 공공성 등을 이유로 ‘부활’을 요구하고 있다. 11년 전 법 제정 당시 논란의 판박이다.
그런데 현재 정치권이나 정부의 분위기를 보면 가뜩이나 모양새가 이상해진 이 법을 더 이상하게 만들려는 것 같다.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 등 일부 국회의원은 연말로 끝나는 이 법안의 유예기간을 3년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가능성은 논외로 하고 법안 통과를 전제로 한다면 법안의 실제 적용기간 보다 유예기간이 더 긴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다.
정부의 입장도 모호하다. 최근 정치권과 언론에서 논란이 계속되자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입장을 내놨다. 내년 1월1일부터 재건축부담금을 부과할 예정이며, 제도의 폐지나 추가유예 등에 대해선 검토된 바 없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속내는 달라 보인다. 어디까지나 ‘아직 검토된 바 없다’는 원론적 답변일 뿐, 막상 법안이 발의되면 검토해 볼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국토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먼저 나서지는 않겠지만 정치권이 강력히 요구해 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이런 식이라면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는 자칫 11년 동안 단 163명에게 고작 22억원의 세금을 걷느라 만들어진 후 아예 지난 2013년부터는 ‘존재는 하는데 본적은 없는’ 전설 같은 법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이는 세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옳고 그름을 둘러싼 논쟁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이미 4년간의 유예만으로도 법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 형평성이 심하게 훼손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법이라면 ‘유예’가 아니라 아예 ‘폐지’하는 것이 맞다. 반대로 법에 문제가 없다면 더 이상 변칙적인 유예를 멈추고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국회와 정부가 원칙을 무시하고 변칙을 일삼는다면 어느 누가 따르겠는가.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