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상영을 막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내 영화계가 낙담하고 있다. 한국 영화산업이 중국에서 싹도 트기 전에 금한령(禁韓令·한류 금지 또는 제한령)이라는 된서리를 맞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번 중국 측 조치로 다음달 16일부터 23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7회 베이징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와 배우를 볼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베이징영화제 측은 한국 영화 등을 초청하려 했으나 당국의 지시로 중단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화제를 담당하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 측은 “영화제 담당 직원의 출장이 예정됐으나 이것도 취소가 됐다”며 “중국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다”고 전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이 영화제에 이민호·김우빈 등 한류 스타들이 대거 참석해 한국이 영화제의 분위기를 이끈 전례와 상반된 측면이 있다. 한국은 지난 2012년에도 ‘의뢰인(감독 손영성)’ ‘북촌방향(홍상수)’ ‘오직 그대만(송일곤)’ ‘써니(강형철)’ ‘숨비-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류상수)’ 등 5개 작품을 출품하면서 베이징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또 2014년에는 ‘소원(이준익)’에 출연한 배우 이레가 천단상 후보에 올라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도 ‘군도:민란의 시대(윤종빈)’ ‘해적:바다로 간 산적(이석훈)’ ‘수상한 그녀(황동혁)’ ‘화장(임권택)’ 등 14개 작품이 출품됐고 2016년에는 ‘마돈나(신수원)’ ‘검은사제들(장재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홍상수)’ 등 5개 작품이 선을 보였다.
베이징영화제에서의 한국 영화 상영 배제에 대한 국내 영화계의 아쉬움도 크다. 한국 영화는 방송이나 공연과 달리 중국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지만 이제 막 중국 시장에서 입지와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참이었다. 중국에서는 연간 외화 편수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지만 한국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데다 한중합작과 컴퓨터 그래픽 기술 수출 등으로 한국 영화와 기술도 중국에서 충분히 승산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화 자체 진출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다양한 진출이 시작됐었는데 영화제마저 길이 막혔다”며 “문화 교류 자체를 중단하는 초강수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사실 영화계에서 중국 측의 ‘사드 보복’은 차츰 수위를 높여왔다. 지난해 중국에 판매된 ‘부산행’은 상영이 무기한 연기됐고 배우 하정우는 중국 여배우 장쯔이와 ‘가면’이라는 영화를 찍을 계획이었으나 최근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한국 영화 해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는 단 한편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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