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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운틴헤드 연출 이보 반 호브 "공동체냐 개인이냐...연극통해 삶의 가치 묻고 싶었죠"

'파운틴헤드' 국내 초연 앞두고 방한한 연출가 이보 반 호브

구소련작가 랜드 소설이 원작

예술·신념 따르는 천재 건축가와

성공 매달리는 건축가의 삶 그려

묵직한 주제의식 담긴 작품

오랜시간 걸렸지만 무대화 결정

연극 ‘파운틴헤드’의 연출자 이보 반 호브 네덜란드 토닐 그룹 예술감독이 30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LG아트센터




“연극은 실제 하는 사람을 보여주고, 지금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 보편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제 작품이 공연되고 이질적인 문화권인 한국에도 소개될 수 있죠.”

LA타임즈가 ‘지금 가장 빛나는 연출가’라고 칭송한 세계적인 연출가 이보 반 호브(Ivo Van Hove) 네덜란드 토닐 그룹 예술감독이 그의 작품 ‘파운틴헤드’의 국내 초연을 앞두고 처음 방한했다. 30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보는 “연극의 역할은 삶의 이유와 존재가치를 묻는 데 있다”며 “파운틴헤드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무대화하겠다는 절실함이 있었던 것도 이 작품의 묵직한 주제의식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보 반 호브는 영국 가디언이 ‘어디를 가도 있다’고 평한대로 뉴욕의 BAM(Brooklyn Academy of Music), 런던 바비칸센터, 영국 국립극장, 독일 샤우뷔네, 프랑스 오데옹, 코메디 프랑세스 등 세계 유수의 극장들이 앞다퉈 작품을 의뢰하는 연출가다. 런던의 바비칸 센터는 최근 이보를 세계적인 연출가 반열에 올려놓은 ‘로마비극’을 재초청했고 다음달 17일에는 주드 로 주연의 신작 ‘옵세션’까지 무대에 올린다. 영국 국립극장도 지난해 이보의 작품 ‘헤다 가블러’를 상연했고 올해 말에는 미국 스타 배우 브라이언 크랩스톤이 주연을 맡은 ‘네크워크’로 이보의 작품을 잇따라 선보인다.

연극 ‘파운틴헤드’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파운틴헤드’는 미국으로 망명한 구 소련 출신 작가 아인 랜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마천루를 세워 올리던 1920~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관습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만의 신념과 예술적 가치관에 따르는 삶을 택한 천재 건축가 하워드 로크와 오로지 사회적 평판과 성공에만 매달리는 또 다른 건축가 피터 키팅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1943년 발표된 이 작품은 2,600만부 이상 판매됐고 건축가, 디자이너들에게 필독서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의 극단 보수주의 단체인 티 파티의 ‘성서’와도 같은 책으로 꼽힌다. 이보는 2007년 이 책을 우연히 선물 받고 연극으로 만들기로 결심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저작권을 얻기까지 6년이 걸렸고 그가 이 작품을 연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적인 색채가 뚜렷한 책을 연극으로 만드는데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보는 “무려 75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원작을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정도로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삶에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을 발견했다”며 “세금이나 공동체 문제 같은 정치적인 이야기들은 빼고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과 이야기 속에 흐르는 깊이 있는 철학을 전달해주기 위해 연극화를 강행했다”고 설명했다.

연극 ‘파운틴헤드’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




750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 중 150페이지 분량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뽑아냈지만 러닝타임은 4시간에 달한다. 원작에서는 이상주의자인 하워드 로크의 편을 들지만 그는 관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겼다. 물론 이보가 애착을 갖고 지향하는 인물 역시 로크다. 이보는 “나 역시 예술가로서 로크의 삶을 지향하지만 연극에서는 두 인물을 동일한 비중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예술가의 이야기를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공동체의 일부’가 될 것인지 ‘완전한 혼자’가 될 것인지 질문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연극 ‘파운틴헤드’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


무대 위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그답게 주연 배우들은 직접 건축 설계 도면을 그릴 수 있는 수준까지 연습해야 했다. 앉은 자세부터 들어오고 나가는 동작 하나하나가 텍스트만큼 중요한 몸의 언어라고 믿는 탓에 배우들은 그의 요구대로 섬세한 연기를 펼쳐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배우 중심형 연출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에 대해 해외 연극계에서는 ‘연출가 중심 연극’을 만드는 제작자로 평하고 있다. 원작을 재창작 수준으로 비틀거나 카메라로 관객석, 극장 밖을 생중계하며 연극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업도 서슴지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는 건축의 과정을 무대화하기 위해 영상을 활용한다. 그는 “내 연극은 인간의 존재 가치와 본성에 집중하는 고대 그리스 연극의 본질을 따른다”면서도 “사용 가능한 기술이 많은데 굳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연극 ‘파운틴헤드’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LG아트센터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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