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피고인’은 그가 이전까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에 대한 도전이었기에 더욱 남다른 의미로 남았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민석은 어둡고 우울했던 캐릭터에 깊이 파고들었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여운을 남겼던 작품과 조금씩 이별을 맞고 있었다.
‘피고인’에서 김민석은 억울한 누명을 쓴 박정우 검사(지성 분)의 딸 하연(신린아 분)을 납치하는 등 사건의 중심키를 쥔 인물 이성규 역으로 분해 죄책감, 절망 등이 뒤엉킨 인물의 심리를 밀도 있게 표현해 냈다.
그 가운데 화제가 됐던 장면은 단연 동요 한 소절로 안방극장을 혼동에 빠트린 6회 엔딩 장면이었다. 감방 순둥이 막내에서 일순간 소름 유발자로 등극한 그는 이 장면 하나로 반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실시간 검색 1위는 물론 김민석의 핸드폰까지 불이 날 정도였다.
“비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상상에 많이 맡겼어요. 섬뜩함이나 내면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도 많았어요. 계산된 연기보다 감정에 집중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말은 조근조근 내뱉고 눈은 슬프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에게 이런 모습이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사실 엔딩 장면이 그 정도의 파장이 될 줄은 몰랐죠”
‘감방’, ‘허름한 여관’이라는 장소 설명처럼 시종일관 암울한 현실과 동행하던 이성규라는 캐릭터에 몰입하다보니 자연스레 김민석의 일상 역시 평소보다 한층 낮고 우울하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로 살까지 몰라보게 빠질 정도였다.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아팠다’, ‘시렸다’ 외에는 할 말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하연이의 미소에 저도 모르게 웃어줬던 장면이 있는데 그게 제일 행복한 장면일 정도였으니까요. 감방에서도 계속 박정우를 향한 죄책감의 연속이었고요. 지성 형의 얼굴을 바라보는 신을 찍는데도 자꾸 시선을 피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이성규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예능 출연은 물론 외출까지 조심했다는 김민석. 그만큼 인물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파고들며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이성규로서 무사히 작품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배우 지성의 힘이 가장 크다고 설명한다.
“지성 선배님이 정말 피곤하실텐데도 소주 한 잔 사주시면서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격려도 많이 해주셨어요. 그 덕분에 형과의 브로맨스도 잘 보여진 것 같고요. 사실 형을 보면서 소름 돋을 때가 많았어요. 자식을 가진 사람들의 절절한 심정을 너무 명확하게 표현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3, 40대 시청률이 여기서 나오는구나 싶었죠. 다시 한 번 배우의 힘을 느꼈어요”
호흡으로 본다면 아역 신린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김민석에게 빨리 결혼해서 딸을 낳고 싶다는 욕심까지 안겨줄 만큼, 두 사람은 극에서 뿐 아니라 실제로도 애틋하고 남다른 정을 나누었다.
“린아는 눈에 애처로움이 있어요. 그래서 촬영할 때마다 더 감정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저를 잘 따르기도 했고, 제 첫 여배우여서 더 애착도 갔고요(웃음). 오키나와에서도 손잡고 해변가를 걷는데 ‘나 고등학생되면 삼촌은 날 까먹을 거잖아요’라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참 미안하더라고요. 린아에게 ‘네가 다음 작품하면서 삼촌 까먹을 수도 있어’라고 했더니 같이 찍은 스티커 사진 있어서 안 까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선배들과 함께 죄수복을 입고 홍대를 활보한 것으로 시청률 20% 돌파 공약을 이행한 김민석. “제 입이 방정이에요. 어디가서 말 조심 해야겠어요”라는 그의 말처럼 ‘피고인’이 이토록 큰 사랑을 받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일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 관심은 김민석에게도 옮겨왔다.
하지만 그는 ‘태양의 후예’를 기점으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생긴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결국 자신이 더 집중해야할 것은 연기라는 것도 깨달았다.
“원래 제 성격 자체가 굉장히 솔직한 편이에요. 싫으면 싫다고 표현했던 것들이 대중이나 관계자 분들에게 의도치 않은 오해를 낳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조금씩 외로워지고 움츠러드는 것들도 생겼죠. 물론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유쾌발랄한 이미지도 제 모습이지만, 저 역시 우울한 면을 가지고 있거든요. ‘피고인’이 그런 점에서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진 또 다른 무언가를 꺼내서 보여드릴 수 있었던 기회였죠”
‘배우는 트라우마, 결핍 덩어리’라고 생각한다는 김민석은 남배우로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전한다. 소위 훤칠한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의 피지컬이 다소 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김민석은 이를 상쇄할만한 잔기능이 발달된 것 같다며 금세 자신을 다독일 줄도 아는 건강한 청년이었다.
“당장 앞만 보고 연기하지 않고 길게 연기 하고 싶어요. 어디에서든 필요한 사람, 잘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항상 뭐든 진심으로 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큰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 하는 것처럼 제 몫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서경스타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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