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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99.9% 타인에 좌우된다"

■보이지 않는 영향력

조나 버거 지음, 문학동네 펴냄

타인이 속한 집단이 내가 소속되고 싶은 부류냐 따라 결과 달라져

대부분 '비슷하지만 다른 선택' 욕구...행동경제학 쉽게 풀어 눈길







3년 전 로버트 갤브레이스(Robert Galbraith)라는 작가의 이름으로 ‘쿠크스콜링(The Cuckoo ‘s Calling)’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3개월간 이 책의 판매량은 약 1,500권, 아마존 판매순위로는 4,709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 이 책의 진면목을 독자들이 알아준 것일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로버트 갤브레이스의 정체가 해리포터의 저자인 JK 롤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정통 경제학에서는 한 사람의 결정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이 가설이 맞다면 줄을 서서 먹는 맛집, 베스트셀러 등 다수의 선택에 따른 상업적 성공은 최고의 실력을 갖췄다는 증거여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조차 이 같은 성공을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력과 성공의 확률이 늘 정비례하지 않는 탓이다. 마케팅 전문가 조나 버거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에서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의 99.9%는 타인에 의해 이뤄진다”며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결정이나 행동은 찾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타인의 영향은 ‘사회적 영향력’이다.

사회적 영향력은 모방, 차별화, 모방과 차별화의 중간인 유사성 추구 등 세 가지 행태로 구체화 된다. 세 가지 행동방식은 각기 달라 보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심리는 모두 인정욕구와 집단화다. 가령 당신에게 누군가 손목밴드를 팔면서 수익금 전액을 암 연구에 쓴다고 한다. 당신은 기꺼이 돈을 낸다. 손목밴드를 차는 것만으로도 당신이 의식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손목밴드를 괴짜들이 주로 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당신은 손목밴드를 차지 않게 된다. 결국 우리는 선택을 할 때 타인의 영향을 받지만 그 타인이 내가 소속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부류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우선 모방은 이미 마케팅 기법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특히 레스토랑 웨이터가 주문을 받은 단어를 똑같이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팁이 평균 70%까지 올라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 연애나 결혼생활이 만족스러운 사람들 역시 상대방을 모방하는 경향이 뚜렷했고 심지어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발음이 귀에 익어 그해 태어난 아이들 이름이 ‘K’로 시작한 사례가 10% 높아졌다는 사실도 있다. 협상할 때도 모방은 유대감을 형성, 거래성사율을 높이고 취업 인터뷰에서 합격 가능성을 높였으며 영업에서도 빛을 발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타인을 모방하는 행위는 회사나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결정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개개인이 집단사고에 동조하는 대신 소신에 따른 의견을 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지 못하도록 비공개로 의견을 개진하게 하거나 반대의견을 낼 사람 한 명을 심어두라고 조언한다.

물론 인간이 언제나 모방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개인의 수요가 시장의 수요와 반비례하는 ‘스놉효과’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특별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소비한다. 차별화의 본질은 정체성이다. 가령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밴드를 좋아하다가 그들이 유명해질수록 그들의 초창기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든지, 판매가 중지된 구글글라스를 웃돈까지 주며 사는 것 역시 “자신을 고유하게 특정짓기 위한 소비”의 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비슷하지만 다른 선택’은 적당히 다르게 보이고 싶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이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행태경제학(혹은 행동경제학)의 이론을 대중적으로 풀어쓴 이 책은 대부분 사례가 흥미롭고 설득력 있다. 그러나 허술한 주장도 눈에 띈다. 중산층일수록 차별화를 선호하고 노동자 계급일수록 유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구매력의 문제다. 노동자층이 타는 차가 종류는 물론 색상까지 유사한 것은 연료비, 세차비 등 관리비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 크다.

또 한 가지. 그는 미국에서 차별화 경향이 두드러지는 이유를 17세기 종교적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온 영국인들의 개인주의 개념에서 근원을 찾았다. 독립과 자유를 어렵게 쟁취했기에 미국인들이 차별화를 소중히 여긴다는 논리다. 그 근거로 미국인들은 덜 발전한 지역의 아파트를 사고 잘 알려지지 않은 폴리네시아의 섬으로 휴가를 간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구매력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가 모방 성향이 강하다고 주장한 중국,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차별화를 위한 소비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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