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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내 인생의 별이 된 물건-문재인편]지켜야 할 소신과 뚝심, 매일 '묵주 반지'를 바라보며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100년전 쯤에 사상가이자 문예비평가인 게오르크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나오는 아름답고도 서정적인 서문입니다. 루카치는 개인과 세계 간의 모순이 없었던 그리스·로마 시대와 달리 근대사회 이후 총체성을 상실한 개인이 이정표를 찾아가는 여행의 기록이 바로 소설이라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방황하던 젊은이들은 이 글을 또 다른 의미로 해석했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이들은 좌표를 잃은 청춘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얻었고 나름대로의 별을 찾으려 했습니다. 아마 지금의 대선주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이들에게 인생의 항로를 알려주는 ‘별’이란 거창한 이념도, 역사속 위인도, 잘나가는 선배도 아니었습니다. 이들 대선 주자들은 자신의 인생이 녹아 있는, 남들에게는 사소한 물건에서 넘어졌을 때 다시 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 잘 쓰지는 않지만 이미 나의 일부를 지배해 절대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을 ‘감정’ 물건이라고 합니다. 권모술수와 감언이설이 판치는 정치판에서 대선주자들의 곁에 머물면서 희로애락을 같이 하고 때로는 용기를 주고, 때로는 인생의 방향타가 됐던 감정 물건은 무엇일까요.





바라보면 뭉클한, 20년간 한 번도 뺀 적 없는 ‘묵주 반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감정 물건은 ‘묵주 반지’다. 천주교 신자라면 누구나 끼는 묵주반지지만 문 후보의 묵주 반지는 조금 특별하다. 그가 왼쪽 네번째 손가락에 끼는 묵주반지는 20년 전에 어머니가 직접 선물한 반지로, 44세 되던 해에 끼고 있던 실반지에서 바꿔 꼈다. 원래 그의 네 번째 손가락에는 부인인 김정숙 씨와 함께 나눠 끼웠던 은색 실반지가 있었다.

이 반지는 문 후보가 사법고시에 패스해 연수원에 다니던 때 첫 봉급으로 산 반지로 당시 문재인은 “그동안 늘 마음고생 시키고 수입도 변변찮은 것 하나 해주지 못했는데 이제 이렇게 반지를 끼워줄 수 있게 됐다”고 아내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정치 생활을 하며 바쁜 일정으로 주일에도 성당을 못가는 자식을 보면서 걱정이 됐던 어머니는 아들 문재인에게 묵주 반지를 선물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아내도 자연스레 그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을 묵주 반지로 바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된 문 후보는 아직도 묵주반지를 보며 ‘아내’와 ‘어머니’를 동시에 생각한다고 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 도우며 ‘빈부격차’, ‘인권’에 눈을 뜨다

문 후보의 부모님은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 때 남하해 아무것도 없는 채로 가난하게 살림을 시작했다. 처음 거제로 내려왔던 부모님은 다시 북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피난을 하는 바람에 손에 한 푼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1953년 태어난 문 후보도 피난민들의 판잣집 촌에서 유년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거제에서 달걀을 싸서 머리에 이고 어린 나를 업은 채 부산에 가서 행상을 했다”고 밝혔다. 또 “양동이를 들고 정기적으로 배급을 타야 했는데 내가 양동이를 들고 가면 수녀님들이 귀엽다고 과일과 사탕을 사주셨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1965년 부산 명문 경남중학교에 입학했다. 공부를 할수록 눈에 보이는 빈부 격차와 사회의 불평등함에 분노하며 문 후보는 1972년 재수 끝에 경희대 법학과에 수석 입학한다. 이후 유신헌법이 선포되며 문 후보는 경희대의 유신 독재 반대 시위의 주축으로 활동하다 1975년 징역 8개월로 구속된다.

그의 어머니는 호송차로 문 후보가 이송되던 순간, 차 밖에서 다급하게 자식의 이름을 불러댔고 문 후보는 아직도 그 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군대로 들어가 전역 후 절에서 공부해 사시 1차를 패스한 문 후보는 80년 경희대에 복학했다. 하지만 5월 17일 비상조치 확대 조치 때 시위를 시작하며 다시 구속된다. 구치소 안에서 우여곡절 끝에 사시 2차 합격 소식을 들은 문 후보는 1982년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부산에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최해 인권변호사 활동을 시작한다.

한 누리꾼이 “아버지 책장에 있는 법률서적 사이에서 발견했다”며 공개한 노무현-문재인 노동법률상담소 홍보물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당시 들어오는 모든 사건을 피하지 않았던 문 후보는 노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던 당시 홍보 책자에 “여러분의 땀과 눈물과 기쁨 속에 항상 함께 있고 싶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법을 잘 모르거나 돈이 없어 애태우는 근로자 여러분을 돕고자 하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주저 없이 상담 문의 바랍니다. 상담료는 받지 않습니다”는 문구를 내걸었다. 그렇게 부산지역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던 문 후보는 함께 일하던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들어가며 본격 정치 인생을 시작한다.

문재인과 노무현, 뗄 수 없는 정치적 동지 ‘우리는 운명’



문재인과 노무현은 정치적 동지로 엮어 각자의 인생을 논할 때 서로의 이름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2011년 문재인이 쓴 책 ‘문재인의 운명’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은 수시로 등장한다. 책은 두 사람의 운명 같은 동행기와 함께 문 후보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던 날 아침 소식을 듣기 시작한 장면부터 선배·친구처럼 지냈던 일화까지 가득 기록돼있다.

문재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인 2010년 ‘부산지방변호사회’에 ‘변호사 노무현’이란 제목의 글을 쓰며 “이 글을 쓰는 것이 매우 힘들고 싫은 일이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함께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그 시대 법과 행정, 정치의 전반적인 사고 틀을 함께 익히고 다져나갔다.



1988년 노무현 의원이 부산 동구에서 초선으로 당선되고 문재인은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시국 사건들을 변론하는 등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을 때도 둘의 관계는 이어졌다. 수차례 총선 출마 요구를 거절했던 문재인은 노 대통령이 서거하며 본격 대통령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의 저서 ‘운명’에서도 문재인은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김대중, 노무현이 이루지 못한 꿈, 민주 정부에서 이루겠다”

문재인의 꿈은 여전히 ‘인권’과 ‘평등’을 향해있다. 그가 정치권에서 그동안 선택해온 길도 대부분 ‘인권’과 ‘평등’ 두 단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소신껏 걸어온 길이 한결같았던 만큼 훗날 그가 그리게 될 정치도 현재 간직한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얼마 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출신 인사 60명이 구성된 위원회 출범식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유능한 경제와 안보의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와 민생, 남북평화, 복지, 지역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양성평등, 권위주의 타파 등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며 “두 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은 저의 꿈이 되고 제3기 민주 정부의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 외신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한 말.


문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공약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확보’다. 이를 통해 경제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겠단 전략이다. 현재 정부 지원으로 민간이 운영하는 보육, 요양시설 가운데 공공시설 비중은 10%에 불과하고, 이 수치를 30% 높이면 30만 정도를 공공부문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81만개 모두 신규 일자리는 아닌 셈이지만 정부 예산을 통해 ‘일자리’라고 할 수 없었던 부분을 ‘공공 일자리’로 만드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막대한 정부 예산을 들여 공공 부문 일자리를 만든다는 문 후보의 공약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비정규직 644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 4차 산업혁명 육성 등도 구체적인 청사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년간 한시도 묵주 반지를 손에서 떼지 않은 채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문재인 후보. ‘모두의 인권과 평등’이라는 그의 정치적 소신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라도 경제나 안보 분야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지 않을까.

/정수현기자 성윤지인턴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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