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작 이를 지켜보는 안방극장은 불편하기만 하다. 계속되는 장르적 변화와 회수 되지 않는 복선들이 혼란을 야기하면서 장점을 점점 희석 시키고 있는 상황. 잘 만들어짐과 불편함 사이에 놓인 ‘시카고 타자기’는 과연 안방극장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까.
8일 방송된 ‘시카고 타자기’에서는 스토커로 인해 베스트셀러에서 표절작가로 전락하는 세주(유아인 분)와 그로 인해 그와 또 다시 한바탕 다툼을 벌이는 설(임수정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앞서 세주의 집에 침입한 스토커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설은 스토커가 경찰에게 잡혀가자마자 기절을 하게 된다. 과거 설이는 국가대표사격유망주였지만, 총을 잡는 순간 전생으로 보이는 환상과 비극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포기한바 있었는데, 이날도 어김없이 과거의 풍경이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세주는 자신을 구하려다가 기절한 설을 자기 집에서 재우고, 두 사람 사이엔 잠시 화해 모드가 감도는 듯했지만, 이도 잠시였다. 세주가 스토커의 편지 내용을 도용해 소설을 썼다는 기사가 터지면서 세주는 표절작가라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심지어 스토커와 세주의 대화를 들은 유일한 사람인 설이 언론 제보자로 몰렸고, 결국 대립각을 세우던 이들은 크게 싸운 채 돌아서게 된다.
세주의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토커가 감옥에서 자살을 하면서 정신적인 충격과 압박을 받게 된 세주는 이후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게 됐고, 심지어 출판사에서는 유령작가 제안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자신을 옥죄어오는 사람들을 피해 비 오는 날 운전을 하던 세주는 자살을 고민하던 중 갑자기 튀어나온 고라니를 피하려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되고, 얼떨결에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런 세주 앞에 설이가 나타나고, 같은 시기 유령작가 진오(고경표 분)가 나타나면서 그를 대신해 소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난 5일 진행됐던 제작발표회 당시 김철규 PD는 ‘시카고 타자기’에 대해 “특정한 한 가지 장르로 규정지을 수 없는 드라마”라고 정의한바 있다.
실제 그의 말처럼 ‘시카고 타자기’에는 고작 2화 밖에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장르의 전환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로맨틱코미디’라고 생각하고 보다가 갑작스럽게 스릴러로 변하고, 스릴러인가 싶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면 또 갑자기 세주와 설의 전생인지 아닐지도 모르는 시대물적인 과거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장르의 전환은 김철규 PD의 수려한 영상미가 덧입혀 지면서 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의문의 오래된 ‘타자기’와 얽힌 세 남녀의 낭만적인 미스터리와 로맨스를 그려낼 진수완 작가까지, 현재까지 타자기에 숨겨진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잘 만들어졌음에도 시청자들은 극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복합장르드라마라고 규정하고 보려고 해도 ‘어느 장단’에 무게중심을 둬야 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들은 재미보다는 ‘알 수 없음’이라는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시카고 타자기’ 는 절대 친절하지 않다. 곳곳에 각종 복선과 흔히 말하는 ‘떡밥’을 뿌려놓았지만, 이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주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시청자들은 어느 인물에 감정을 이입을 해서 봐야할지 갈팡질팡 하게 되고 결국 이는 극의 몰입도 방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시카고 타자기’가 재미를 주는 이유는 바로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 무려 13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임수정은 여전한 동안 미모와 함께 안정감 있는 연기를 펼쳐나간다. 유아인과의 호흡 또한 탁월하다. 평범하지 않은 인물 한세주와 전설을 연기하는 유아인과 임수정은 적당한 과장과 감정의 강약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균형을 잡아나가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진오를 연기하는 고경표는 짧은 대사와 등장만으로도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재미를 더하고 있으며, 온화한 얼굴 밑 질투와 열등감을 숨겨놓은 곽시양은 어딘가 모를 꿍꿍이를 드러내며 극의 서늘함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아무리 최고의 라인업을 이뤘다고 해도, 계속해서 시청자들을 ‘알 수 없음’ 상태로 만든다면 잘 만들었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안방극장이 바라는 것은 그리 크지 않다. 지금 감춰진 것을 조금이라도 공개하는 것, 이제 그만 떡밥을 뿌리고, 뿌려진 것을 회수해서 같이 알고 즐기자는 것이다. 이제 그만 숨겨놓을 때도 됐다.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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