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국내 유력 가구 제조사인 P사에 비상이 걸렸다. P사는 수천 가구가 입주할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빌트인 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는데 디자인권 침해 금지 가처분 소송이 걸리면서 가구 공급이 묶여버린 것이다. 변호를 맡은 오성환(사진) 변호사는 P사 소송 상대방의 디자인권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백방으로 이 디자인권이 출원되기 전에 공지된 디자인(기존에 널리 알려진 디자인)을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미국 유력 디자이너들이 모인 길드에서 소송 상대방의 디자인권과 동일한 디자인을 찾아냈다. 소송에서 이긴 P사는 무사히 가구를 공급했고 분양 지연으로 아파트 시공사에 물어줘야 할 최대 1,000억원의 손해배상금도 피할 수 있었다.
오 변호사는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나와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로스쿨 1기 출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발명과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벤처 사업가의 길을 고민하다가 로스쿨 설립 소식을 듣고 ‘특허 전문 변호사가 되자’는 마음을 먹었다. 오 변호사는 “로스쿨에 입학하자마자 남들은 잘 듣지 않는 특허법 과목을 집중 수강했다”며 “인턴 활동도 특허사무소에서 하면서 각종 실무를 어깨너머로 익히고 나니 졸업 후 취직 면접 때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란 생각을 할 정도로 자신감이 붙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호사 자격증을 딴 뒤 전공인 전기공학 지식을 살려 ‘특허’만 파왔다. 지식재산권 법률 서비스로 유명한 법무법인 강호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2013년부터는 4년2개월간 특허청 심사관으로서 무선통신·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기전자 분야 특허 심사를 맡았다. 국가지식재산연수원과 한국특허아카데미 등에서 특허법·특허소송 실무 강연도 적극적으로 다녔다. 오 변호사는 “애플이나 퀄컴 같은 다국적 대기업의 고급 국제 특허 심사를 담당하면서 어떻게 하면 신기술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당시의 경험을 기억했다.
오 변호사는 올해부터 바른에서 특허분쟁을 담당하고 있다. 특허 한 우물만 판 경력이 높은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요즘도 강연에서나 고객을 만날 때나 “좋은 신기술이 시장을 창출하고 계속 커 나가기 위해서는 기술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으면서도 후발 기업들의 참여를 촉진할 적절한 특허 보호가 관건이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창업을 꿈꾸는 국내 벤처 기업가들과 중견·중소기업이 특허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대학·기업이 연구개발(R&D)에는 과감하게 투자하면서도 특허보호에는 인색하다”며 “특허 보호를 얼마나 두텁게, 적절하게 쌓아두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장 여부가 판가름난다”고 강조했다. 특허 보호에 인색하다 보니 국내 기업들이 등록하는 기술 특허에는 ‘구멍’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그는 특허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안일한 자세가 중국 등 다른 나라의 빠른 추격을 허용하는 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조금 과장하더라도 국내 기업들은 특허 100건 가운데 한두 건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을 빼가는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좋지만 특허 보호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기업들의 현실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로 보호장치를 쌓는다는 기존 고정관념을 깨고 특허를 먼저 내고 기술을 개발하는 ‘선 특허, 후 개발’ 발상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오 변호사는 로스쿨 제도가 자신과 같은 전문 변호사를 양산하는 처음의 취지를 잃어버리는 현실에 대해서도 아쉬워했다. 그는 “이제는 법률 서비스를 쇼핑하는 시대”라면서 “고객들은 특정 분야에 특화한 스페셜리스트를 주문하고 있는데 정작 로스쿨 재학생들은 변호사 시험과 학점 관리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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