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과연 전쟁을 택할까. 보도만 보면 그럴 분위기다. 정말로 ‘항공모함 3척과 강습상륙함 2척이 한반도에 집결’한다면 전쟁준비 외에는 그 목적을 달리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실제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미 해군의 항공모함 3개 전단이 한꺼번에 모이기는 어렵다. 확실한 사실은 한가지뿐이다. 항모 칼빈슨이 호주로 가려던 일정을 바꿔 ‘서태평양’으로 항로를 돌렸다는 점이다. 서태평양이 한반도 해역을 콕 집어 지칭하지는 않아도 지척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여기에서도 간과하는 점이 있다. 칼빈슨호의 최종 목적지가 모항인 샌디에이고 군항이라는 점이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한국 해역에서 칼빈슨호가 훈련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통고받은 것은 없다”며 “칼빈슨호는 모항인 샌디에이고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몰론 변수는 있다. 일직선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미 해군의 항모는 장기간 해상에 체류하기에 평상시라도 우방국 항구에 정박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훈련을 한다”고 덧붙였다. 서태평양을 통해 귀항하는 길이라고 해도 한반도 상황 악화시 근접작전을 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을 마친 칼빈슨호가 다시 온다는 것이 극히 이례적이기는 하나 미 해군의 속사정이 있다. 한반도에 집결할 수 있다고 알려진 항모 레이건호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제정세와 미 해군 사정에 밝은 최현호 밀리돔 운영진 대표는 “레이건호는 수리와 정비·휴식을 위해 미 해군 7함대의 모항인 요코스카 군항에 장기정박 상태”라며 “칼빈슨호는 레이건호를 대신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풀이했다.
‘한반도에 투입된다’는 또 다른 항모 니미츠호 역시 즉각 또는 동시 투입 가능성이 없는 편이다. 니미츠호의 현재 위치는 샌디에이고 군항 근처 미 서부해안. 로버트 위크 미 국방부 부장관이 이례적으로 승선해 ‘해외 전개’를 언급했다는 점이 ‘한반도 집결설’의 근거다. 설령 니미츠호가 한반도로 향한다고 해도 두 가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함대 간 구역을 없애고 있는 미 해군 전략의 일환. 태평양 날짜변경선을 경계로 동쪽은 훈련함대인 3함대, 서쪽부터 인도양까지는 작전함대인 7함대가 맡았으나 앞으로는 편성을 바꿔가며 운용한다는 게 미 해군의 전략이다. 두 번째는 샌디에이고항으로 가는 칼빈슨호와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두 번째 해석이 맞는다면 ‘항모 3척 집결과 전쟁 위기설’은 미 해군의 ‘돌려막기’를 부풀린 셈이다.
미국이 전쟁을 하고 싶어도 미국 민간인의 생명과 재산이라는 중대 변수가 남아 있다. 한국에 거류하는 미국인은 약 14만명. 전쟁 발발시 주로 서울과 경기도에 몰려 있는 미국인의 안전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안위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한국에 투자된 미국의 재산도 상당하다. 공장 등에 직접투자(FDI)된 원금만도 지난해 말 현재 259억 달러에 이른다. 간접투자액은 더 많다. 채권 11조원(지난해 말 기준)에 주식(3월 말 현재)은 무려 220조8,360억원. 2년 전보다 30.6% 늘어난 금액이다. 서울에 포탄이 떨어지면 미국인의 재산가치가 급락할 게 뻔한데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하다는 트럼프가 무턱대고 대북타격에 나설지 의문이다.
물론 불안정성은 여전하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군 당국자의 한두 마디에 동요할 정도로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 체제 아래서 안보가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라며 “미군의 대북 대응책이 여전히 확정되지 않은 채 긴장만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특히 칼빈슨호의 항로와 작전형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읽는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칼빈슨호가 서태평양을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강도 높은 무력시위에 나설 경우 미국발 한반도 불안 요소가 현실로 다가서게 될 것”이라며 “한국 정부와 협의 없는 대북 선제 타격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국과 협의 없는 미국의 대북 무력 사용은 말이 안 된다”며 “최근 경계하는 차원을 넘어 필요 이상으로 안보 불안을 야기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미국 당국자들이 연이어 대북 강경발언을 해대고 칼빈슨호의 항로 변경 소식에 중국은 북한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의도가 어느 정도 통했다고 볼 수 있지만 관건은 북한의 태도다.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4월15일) 등 유난히 행사가 많은 이번 주 북한이 수위 높은 도발에 나선다면 대북 강경론이 거세지며 긴장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5월9일로 예정된 대통령선거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대표 등이 방한해 대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모색되고 있으나 한반도 상황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분명한 것은 대치와 긴장 국면이 지루하게 이어져도 당장 전쟁이 터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보다 과장된 위기 조장은 가짜 뉴스 이상으로 위험하다.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가, 왜 불필요한 안보 위기를 조장하는지.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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