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처럼, 배우 이현욱에게 ‘유도소년’이라는 작품은 도전이었다. 앞서 연달아 선보인 ‘트루웨스트’나 ‘올드위키드송’과는 분위기부터 접근 방식까지 모두 달랐다. 두 작품이 내면으로 파고드는 무게감이 있다면, ‘유도소년’은 그와 반대로 바깥으로 발산하는 에너지를 가져가야 했다.
올해로 삼연 째를 맞은 연극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선수 경찬이 1997년 고교전국체전에 출전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인물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추억까지 이끌어내며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현욱은 극중 전도유망한 복싱국가대표 선수 민욱 역을 맡았다.
특히, 전작들이 ‘내가 이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으로 출발점을 자신에게 두었다면 이번에는 ‘민욱이라는 사람이 있다면 이랬을 것 같다’는 상상의 힘에 많이 맡겼다. 실제 자신과 너무 달랐기에 혹여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면 인물의 폭이 좁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기존 캐릭터와 상반돼서 굉장히 새롭기도 하고 공부도 많이 돼요. 극중 민욱은 오랫동안 짝사랑 해온 화영한테 자신의 순정을 피력하는 인물이데, 그 모습을 내가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컸죠”
스스로 자책하다가, 또 악으로 버티는 등. 샌드백을 치는 짧은 순간의 장면에도 나름의 드라마를 넣으려고 노력했다는 이현욱은 배우 스스로 그 상황 안에 빠져있어야 인물이나 이야기에 대한 정당성이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극중 향수를 뿌리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렸을 때 처음에는 너무도 당혹스러웠다고 표현할 만큼, 모든 장면을 인물로서 진지하게 임했다. 가볍되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유도소년’이라는 극에 집중 해오다보니 자연스레 배우로서의 스펙트럼 역시 한 단계 성장했다.
이와 함께, 이 작품을 관통하는 ‘승패의 명암’ 그 이상에 자리한 ‘도전’이라는 주제는 배우 이현욱에게도 적지 않은 자극제가 되었다. 파스 냄새, 땀 냄새가 진동하는 정직한 에너지를 내뿜는 ‘유도소년’은 정신없이 달려왔던 자신에게 또 한 번의 위로를 전하는 계기가 됐다.
“극중 코치님이 ‘지는 법도 가르쳤어야 하는데 이기는 법만 가르쳤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말이 지금 제 나이대 모든 사람들한테 필요한 말인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뭔가 내가 얻으려고 하는 목표나 기대들 때문에 쫓기듯이 달리려고만 했지, 나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괜찮다고 다독이는 여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역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배우’라는 일에 대해 ‘이게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되묻기도 했고, 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거는 기대 속에 더욱 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존감을 떨어트린 순간을 겪었다. 자연스레 연기에 대한 열정도 식었고 커지는 회의감에 연기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랐을 쯤 ‘트루웨스트’라는 작품을 만나면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오만석 형이 연출을 하신 ‘트루웨스트’라는 작품이 저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형들과 같이 인물을 찾아내면서 무대 위에서의 확신이나 자존감까지 회복이 됐죠. 그때 저를 많이 돌아봤는데, 한 번도 나를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한 적이 없더라고요. 연기를 제대로 즐긴 적도 없더라고요. 그만 두는 것도 도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버티고 또 버티다 보니 즐기는 순간이 찾아오더라고요”
귀한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일의 소중함만큼 이제 이현욱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 나가는 법을 터득했다. ‘트루웨스트’, ‘올드위키드 송’, ‘유도소년’에 이르기까지 좋은 선배님,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게 됐고, 그들의 연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을 발견하게 되는 깨달음도 얻었다. 깨지고 부딪치며 성장했던 ‘유도소년’ 속 인물들처럼 이현욱도 그렇게 성장하고 있다.
“제가 어떤 공연이나 캐릭터를 연기하든 그것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눈을 갖고 싶어요. 그래서 어떤 작품이 들어와도 재미있고 자신 있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눈으로 연기를 더 오래 즐기고 싶어요”
/서경스타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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