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인 한성호(가명·35)씨는 갓 돌이 지난 딸을 데리고 외출할 때 난감한 상황을 마주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딸의 기저귀를 갈아줄 곳이 마뜩잖기 때문이다. 남자화장실에 영유아용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돼 있는 백화점, 기차역 같은 곳은 그나마 다행. 각종 기념관이나 박람회장 등에 가면 ‘육아 아빠’를 위한 기저귀 교환대가 없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씨는 “육아하는 아빠를 위한 제반 시설이 많이 생겨났다고는 하나 보다 섬세한 정책적 배려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 씨처럼 어린 자녀와 외출하는 육아 아빠의 불편을 덜 수 있도록 남녀 화장실 기저귀 교환대 의무설치 시설이 확대된다.
여성가족부는 문화시설과 종합병원·공공업무시설의 남녀 화장실에도 영유아용 기저귀교환대를 1개 이상 설치하도록 행정자치부에 권고했다고 12일 밝혔다.
권고는 각 부처의 주요 정책·법령을 양성평등 관점에서 검토해 개선을 요구하는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 결과에 따른 것이다. 현재 기저귀교환대는 철도역·공항시설 등지의 남녀 화장실에만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돼 있다.
여가부는 또 아이를 데리고 가 씻기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바닥면적 합계가 500㎡ 이상인 탁구장·체력단련장·에어로빅장·볼링장·골프연습장의 경우 유아동반자를 위한 별도의 샤워실과 탈의실을 설치하도록 보건복지부에도 권고했다.
여가부는 임산부 등을 위한 이른바 유아휴게실도 지역자치센터·보건소·공공도서관·의료시설 등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휴게시설에는 수유실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칸막이나 커튼 등으로 구분해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에는 또 손자·손녀를 돌보는 황혼 육아가 증가하고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는 시대변화를 반영해 성별로 특화된 노인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밖에 출산·육아에 있어 남성의 권리를 강화하고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5년 7월 개정된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채택한 ‘모·부성권’ 개념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여성농어업인 육성법 등 4개 법률에도 적용토록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권고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제도를 여성의 ‘모성보호’로서뿐 아니라 ‘부모 모두의 권리’로서 사회가 인정하고 보장해 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또 ‘아빠 육아’를 확대하기 위해 현재 3일인 ‘배우자 출산휴가 유급기간’을 연장하고, 맞벌이 학부모가 자녀의 학교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자녀돌봄휴가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중장기적 검토 사안으로 제안했다.
개선권고를 받은 부처는 다음 달 12일까지 개선계획을 제출하고, 2018년 5월 말까지 추진실적을 제출해야 한다.
박난숙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국장은 “양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남성들의 육아 참여를 뒷받침하는 양육 친화적인 사회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