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하다...등 뒤에서 북풍이 분다...하지만 걱정하지 마라...동풍이 북풍보다 강하니까...시진핑엔 밑에서 한장...김정은도 밑에서 한장...트럼프도 밑에서 한장...나 한장...’
봄을 지나 여름이 다가오는데 때 아닌 북풍이 분다. 여의도엔 벚꽃이 한창이지만, 정치권은 북풍에 흔들리고 있다. 북풍이라고 해서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누구에겐 차갑지만, 누군가에겐 따뜻하다. 북풍을 대하는 대선 후보들의 자세는 각양각색이다. 어떤 후보는 북풍을 피하기 위해 말을 바꾸고, 어떤 후보는 북풍에 정면으로 맞서고, 어떤 후보는 북풍을 십분 활용한다.
전통적으로 북풍은 군사정권과 보수여당에게는 승리의 공식이었고, 진보야당에는 곧 패배였다. 남한의 군사정권과 북한 김씨 일가를 ‘적대적 의존 관계’로 빗댄 것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리송한 이런 상관관계 때문이었다. 북풍은 남한 보수의 집권을 정당화시켰고, 남풍은 북한 김씨 일가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명분을 제공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북풍의 위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가 일으킨 ‘동풍’, 중국에서 불어오는 ‘서풍’도 만만치 않다.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둘리는 대한민국. 올해 대선에는 어떤 바람이 더 큰 영향을 미칠까. 대표적 북풍 사례를 정리해봤다.
▲1972년 유신 그리고 사회주의 헌법 =1970년대 초반 미중 데탕트 하에서 남북은 1972년 7월 4일 역사상 최초의 합의문인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3원칙이 성명의 골자다. 그로부터 약 3개월인 지나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유신을 선포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지상 과제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의 정치체제를 개혁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7.4남북공동성명을 채택해 놓고는 이를 자신의 권력 강화와 영구집권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2개월 뒤, 김일성은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한다. 이 헌법의 명분중 하나도 “통일과 민족적 독립‘이었다. 하지만 핵심은 최고지도자의 권한을 강화한 ‘주석제’ 도입. 김일성은 스스로 주석에 취임해 3대 세습의 기초를 다진다. 불과 2개월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너무나 유사한 남한과 북한 집권층의 행태는 두 정권의 관계를 ‘적대적 의존’으로 규정짓는 계기가 된다.
▲1987년 대선 KAL기 폭파사건 = 선거일 18일 전인 11월 29일 북한 대남공작원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시켜 승객 115명이 사망하는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무엇보다 유권자들의 불안 심리를 크게 자극했다“고 회고했다.
결정타는 투표일 바로 하루 전날인 12월 5일 터졌다. 김현희가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돼 한국에 끌려온 장면이 브라운관을 통해 전파된 것이다. 노태우 전 후보는 자신에게 전적으로 유리해진 국면을 이용해 색깔 공세를 시작하며 결국 대통령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1992년 대선 ‘간첩’ 사건 = 이때엔 오늘날 생소한 북풍몰이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중부지역당 사건’이다. 당시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0월 6일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로 적발된 95명을 간첩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이들 중 62명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소속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김대중 평화민주당 대선 후보의 비서가 연루돼 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김대중 후보에게 덧씌워졌던 ‘레드 콤플렉스’가 다시금 부활했다. 그 해 대선의 승리는 3당 합당을 통해 여당 총재가 된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의 차지가 됐다.
▲1997년 대선 ”판문점서 총 쏴달라“= 외환위기 직후 벌어진 대선에서도 북풍이 불었다. 이른바 ‘총풍사건’이다.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오모씨 등 3명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아세아태평양 평화위원회 박충 참사를 만나 판문점에서 총격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이회창 후보가 사전에 알고 있었거나 지시했는지 여부가 선거 기간 내내 쟁점으로 다뤄졌다. 선거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2012년 대선 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사건=대선을 2달여 앞둔 10월 8일 여당인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2007년 10월 3일 백화원초대소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가리킴) 김정일에게 ‘NLL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 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 어로 활동을 하면 NLL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며 ‘NLL포기’ 발언을 폭로해 일으켰다. 이 사건은 나중에 ‘사초 실종’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친박 중의 친박인 윤상현 의원이 2014년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 건 아니라고 본다“는 말을 남겨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느냐 안 했느냐는 문제를 갖고 여야가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것이 기억난다“며 ”김정일 위원장이 4번이나 포기라는 단어를 쓰며 유도했으나 노 전 대통령께서는 한 번도 포기라는 말을 쓰지 않으셨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NLL포기 발언 논란이 ‘셀프 북풍’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어쨌든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2016년 총선, 탈북자 기획입국 사건=역사상 최고의 코미디로 기록될 만한 ‘북풍’이다. 2016년 4월 7일 통일부는 ”북한 해외식당에서 근무 중이던 지배인과 종업원 등 13명이 집단 귀순했다“고 발표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6일 앞둔 시점이었다. 대규모 귀순 즉시 언론에 자세히 알려주는 ‘신속함’과 ‘친절함’까지 발휘했다. ”평소 통일부답지 않은 일처리“라는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통일부는 이들의 언론 접촉까지 막아 ‘기획입국설’을 부추겼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기획입국설의 진위 여부를 밝혀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당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참패했다.
▲핵·미사일 실험=북풍은 필연적이기도 하다. 북한의 주요 기념일이 대선과 미묘하게 맞물리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2012년 12월 12일 은하 3호(대포동 2호) 재발사에 성공했다. 김정일 사망 1주기(12월 17일)를 닷새 앞두고 대내외에 힘을 과시한 것이다. 남한 대선을 7일 앞둔 시점이기도 하다. .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도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 3개부속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남북 화해 무드를 이어가던 정부는 연말들어 북한과 대치하다 결국 ‘팀스프리트’ 훈련을 재개하는 등 강공으로 돌아선바 있다.
5월 9일 치러지는 대선의 북풍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중시하는 기념일인 태양절(김일성생일, 4월 15일), 조선인민군 창건일(4월 25일)이 대선일 앞에 자리잡고 있어서다. 앞으로도 대선이 5월에 치러지는 점을 감안하면 북풍은 대선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될 공산이 크다. 북한이 남한의 정권 교체기에 핵과 미사일 실험을 강행해 힘을 과시하고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능현기자 김기혁 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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