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학사 비리로 몸살을 앓은 이화여대 이사회가 21년만에 직선제 요소를 가미한 총장 선출 방안을 14일 확정했다. 하지만 교수·학생 등 구성원별 투표 반영 비율을 놓고 갈등이 커 실제 투표일은 결정하지 못했다.
이화여대 이사회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교내 법인행정동에서 회의를 열고 구성원별 투표 반영 비율 조정안을 담은 ‘제16대 총장후보 추천에 관한 규정’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규정에 따르면 차기 총장 선거에서 각 구성단위 투표 반영비율은 교수를 100으로 놓을 때, 직원은 15.5, 학생은 11, 동문은 2.6이다. 백분율로 환산하면 교수 77.5%, 직원 12%, 학생 8.5%, 동문 2%가 된다. 이화여대 이사회는 앞서 1월16일 ‘총장후보 추천에 관한 규정’ 제정을 승인하고 교수 82.6%, 직원 9.9%, 학생 5%, 동문 2.5%의 투표 반영 비율을 정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반발하면서 학교 측 제안으로 교수·학생·직원·동문 대표자들이 참여하는 4자 협의체를 만들어 합의점을 모색해왔다.
이사회가 확정한 차기 총장 선출 규정은 간선제 골격은 유지하되 21년만에 직선제 요소를 도입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화여대는 지난 1996년 총장 직선제를 폐지한 뒤 교수·직원·동문이 참여하는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복수의 후보를 뽑으면 이사회가 이중 1명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했다. 지난해까지는 추천위원회 구성 방식에만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학생들까지 참여하는 직접 투표로 총장 후보 2명을 정하면 이사회가 총장을 확정한다.
총장 선출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뀐 이유는 지난해 학교를 휩쓴 일련의 사태로 간선제를 뜯어고치자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화여대 학생들은 평생교육 단과대 ‘미래라이프대학’를 신설하려던 학교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이어 ‘최순실 스캔들’의 한 축인 정씨 학사 특혜로 최경희 전 총장을 비롯한 이화여대 교수들이 줄줄이 기소돼 재판받는 상태에 이르자 학교 구성원들이 직선제 부활을 검토하게 된 것이다. 또 이화여대의 이런 움직임은 국내 다른 대학들이 총장 직선제를 고민하는 계기도 됐다.
다만 이화여대가 새로운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하려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각자 투표 반영 비율 상향을 요구하는 구성원들의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학생들은 25%내외 수준으로 투표 반영 비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의 중앙 의결기구인 이화여대 중앙운영위원회는 14일 오전 법인행정동 앞에서 ‘총장선출 관련 이화인 요구안 수용 촉구 집회’를 열어 “학생 투표 비율을 대폭 올리라”고 촉구했다.
이사회는 이날 차기 총장선거 투표일을 결정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충분한 논의를 위해 5월 말∼6월 초까지는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사회 측은 논의를 진행하되, 가급적 빨리 총장 공석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정씨 특혜 논란에 휘말린 최 전 총장은 4년 임기를 절반 정도만 채우고 지난해 10월19일 불명예 퇴진했다. 1886년 시작한 이화여대 역사에서 총장이 임기를 다 못 채우고 퇴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명수 이화여대 이사장은 이날 이사회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정된 비율이 4자 모두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으나, 6개월이 지나도록 총장을 선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기다릴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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