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한국 횟집 앞에 있는 수조가 일본 횟집에는 없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선호하는 회가 각각 활어와 선어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회를 먹을 때 갓 잡아 올린 생선을 선호하고 일본인들은 생선을 하루 이틀 정도 숙성해서 먹는다는 얘기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입맛이 다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 방송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어떤 것이 활어회와 선어회인지를 밝히지 않고 두 회를 한 점씩 제공한 후 더 맛있는 회를 골라보게 하니 선어회를 고른 수가 더 많았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숙성한 회가 조금 더 쫀득하고 감칠맛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맛있다는 선어회가 이제야 빛을 보는지 최근 길거리에 숙성된 회를 판다는 횟집이 많이 늘었다. 우후죽순 추종자들이 늘어나면 원조의 고집도 빛나게 마련이다. 50년 넘게 선어회 하나만 고집해온 가게가 있다. 서울시 종로 5가 방산시장의 ‘삼우일식’이다.
One go! 일단 씹고!
역사를 자랑하는 맛집은 당연한 불편함이 있다. 창업 때의 규모가 그대로 유지돼 공간이 협소하다든가, 비품이 신식이 아니라든가 등 ‘원조집을 방문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는 이유 말이다.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갔을 때 드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려나.
삼우일식은 주인장도 개업 연도에 대한 질문에 ‘50년 전 정도’라고 대답할 만큼 오래된 집이다. 그만큼 가게 구석구석에는 시간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오래된 목제 식탁, 의자는 사람 기름이 묻어 반질반질하다. 오래된 액자에 끼워진 색바랜 종이도 색다른 감흥을 불러온다.
가게를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이 그리 넓지 않다. 종로 5가에 위치해 종로와 을지로의 샐러리맨들이 저녁 시간에 회포를 풀기 위해 많이 방문하는 특징도 있어 예약을 하지 않으면 문 근처 자리에 앉아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특히 금요일 저녁에는 음식을 맛보지 못하고 발을 돌리는 일도 있다.
연식이 오래된 화장실 등 비품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지런한 가족이 사는 가정집처럼 나이 먹은 비품이지만 항상 청결하다.
오히려 오래된 가게가 깨끗하게 관리돼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게 만든다. 산업화 시기에 우리 아버지 세대가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바닷가 여행길에 우연히 실력 있는 주방장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른 기쁜 기분이 샘솟기도 한다. 약간의 불편함이 주는 색다른 재미인 셈이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는 흠은 있다. 선어회를 먹기 위해 시켜야 하는 모듬회는 1인당 5만 원이다. 2인분 가량인 가장 싼 모듬회 메뉴가 7만 원이니 최소 3만 5,000원은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주인장께 비싸다고 이죽거리면 그날그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물 좋은 물건을 골라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에 음식이 하나하나 올라오면 전혀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Two go! 화끈하게 빨고!
요리사의 기술을 평가하려면 쓰레기통을 보면 된다고 했다. 원재료에서 맛을 내는 최대한의 부분을 사용하면 자연스레 버리는 것도 줄어들게 될 테니 말이다. 생선요리에 적용되기 좋은 말이다. 생선은 살만 먹지 않는다. 껍질은 무쳐먹고, 내장으로는 젓갈을 담그고, 남은 뼈와 머리로는 맑은 탕을 끓여 먹을 수 있다. 다만 조리사가 그 음식을 할 수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실력 있는 집일수록 생각지도 못했던 갖가지 반찬이 딸려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삼우일식이 맛집으로 꼽히는 이유다. 회를 시키면 나오는 찬들이 생선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주인장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생선 한 마리를 모두 쓰는 탓에 찬의 종류도 많아 빈 그릇을 치우고 새 음식이 담긴 그릇을 들여놓아야 하니 먹는 사람도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빨리 먹지 않으면 ‘안 먹고 뭐 하느냐’는 주인장의 타박을 들을 수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좋은 음식을 위하는 주인장의 고집은 회를 담은 접시에 그대로 드러난다. 50년 넘게 고집한 선어회는 입에 넣으면 활어보다 쫄깃쫄깃하고 찰지다. 숙성 기간을 거치면서 살이 응고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감칠맛과 단맛은 한층 더하다. 생선 특유의 고소함이 가득 찬다.
그러면서도 정이 있다. 아주머니께 “회가 맛있다”거나 “오늘따라 예쁘시다”는 등의 아부성 멘트를 날리면 “이것도 먹을래요?”하며 그날 남은 횟감을 더 썰어 내주신다. 이날도 어김없이 아주머니의 서비스는 왔고, 마침 그날 남해에서 올라온 물 좋은 홍어가 상에 올라왔다. “계 탔다”
마지막은 회를 뜨고 남은 광어의 머리와 뼈로 끓인 맑은 탕이다. 콩나물과 무가 아낌없이 들어가 있어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두부도 좋은 콩을 썼는지 고소한 맛이 난다. 사실 이 맑은탕은 집에 가지 말라고 내주는 족쇄 같은 음식이다. 한 숟가락 뜨면 술을 불러 가게 밖을 나갈 수가 없다.
Three go! ‘신뢰’를 맛보고!
선어가 활어보다 맛있다면 왜 한국인들은 활어를 고집한 것일까. 한국 활어회 문화의 뿌리에는 ‘불신’이 있다는 설명이 있다. 신선한 음식은 몸에 약이 되고, 상한 음식은 독이 된다. 하물며 생선회는 열처리 과정을 하지 않아 잘못 먹으면 병에 걸리고 심지어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회를 뜨는 가게에 있어 신선한 재료를 썼는지, 얼마나 깨끗하게 조리했는지는 기본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지침이다.
불신, 한국 활어회 문화는 생선회를 뜨는 식당의 위생을 믿지 못해 손님이 살아있는 생선의 살을 들어내는 모습을 봐야 직성이 풀렸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식당의 위생관리를 하지 않아 생기는 사건 사고가 비일비재했음을 미뤄보면 그렇게 틀린 설명도 아니다 싶다. 당장 지난해 8월에도 학교 급식시설에서 식중독 사고가 6건이나 발생했다.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도 믿기 힘든데, 일반 식당을 신뢰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생선을 숙성시킨다니, 위생상태를 어떻게 믿겠는가. 불신이 활어회 문화의 뿌리에 있다는 설명이 그리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이유다.
활어회를 고집하는 마음처럼, 지난해 촛불시위의 뿌리에도 불신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던 지난해 12월 9일 블룸버그통신은 탄핵 사태를 ‘정부와 재벌의 고리를 드러낸 묵시록’이라고 평가했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뿐 아니라 정경유착 등 사회 지도층의 총체적 문제에 대해 비판했다는 얘기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가 하나둘씩 드러났을 때 시민들이 느꼈던 감정은 가게 주방의 더러운 모습을 봤을 때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사회 지도층이 그렇게 깨끗하지 않다’는 의심이 하나둘씩 실체로 다가왔을 때, 다시 말해 불신이 실제가 됐을 때 밀어닥치는 분노가 지난해 겨울 광화문을 메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회’ 간판을 내걸었지만 수조가 없는 가게들이 점점 많이 생겨나고 있다. 아마 생선포가 냉장고 속에서 꼬들꼬들 차지게 굳어가고 있을 테다. 가게들이 위생적으로 생선을 숙성시켰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회를 즐기는 문화도 바뀌지 않았나 싶다. 신뢰의 형성이 입맛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든 셈이다. 마찬가지로 푸른 기와집의 빈자리가 채워질 때 즈음, 국민은 먹을거리를 신뢰하듯 정치를 믿을 수 있을까. 불신과 배신의 정치는 신뢰의 정치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50년 전통집에서 선어회를 오물거리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위치: 1호선 종로5가 역에서 7번 출구로 나와 직진. 청계천을 지나 방산시장 입구가 나오면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가격: 모듬 회 인 당 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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