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네요.”
프로 15년차 대선배 안시현(33·골든블루)과 3차 연장전 끝에 승리한 19살 새내기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박민지(19·NH투자증권)가 프로 데뷔 단 두 번째 대회 만에 ‘챔피언스 클럽’에 이름을 올리며 대형 신인의 등장을 알린 장면이었다.
박민지는 6일 경기 용인의 88CC 나라·사랑코스(파72·6,583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삼천리 투게더오픈(총상금 9억원) 4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기록,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안시현, 박결(21·삼일제약)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승부 끝에 생애 첫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프로로 전향한 박민지는 지난 9일 끝난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서 데뷔전을 치른데 이어 두 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나흘 내내 단독 또는 공동 선두를 달린 끝에 정상까지 밟았다. 이는 미국 무대에서 활동하는 김효주(22·롯데)가 2012년 10월 프로 전향을 선언한 뒤 그 해 12월 열린 2013시즌 개막전 현대차 중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것과 견줄 만한 성과다.
박민지는 아마추어 시절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지난해 국가대표로 뛰면서 호주 아마추어와 아시아태평양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제패한 그는 세계 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 단체전 우승으로 KLPGA 정회원 자격을 따냈다. ‘바늘구멍’으로 통하는 2017시즌 시드전도 8위로 통과해 2부나 3부 투어 활동 없이 정규투어로 직행한 ‘준비된 신인’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여자핸드볼 대표팀 선수로 뛴 어머니 김옥화씨로부터 체력과 운동신경도 물려받았다.
박민지가 이번 대회 첫날 단독 선두에 오를 때만 해도 깜짝 선전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 2·3라운드에서도 공동 선두를 달려 탄탄한 실력을 보여줬지만 공동 선두 안시현, 3타 차 3위 장하나(24·비씨카드)의 벽은 높아 보였다.
최종라운드가 시작되자 박민지는 1번과 2번홀(이상 파4)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2타 차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그러나 3, 4, 7번홀에서 잇달아 보기를 적어내 선두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그 사이 이날만 6타를 줄이며 맹추격한 박결이 선두권으로 도약했다. 박결이 공동 선두로 먼저 경기를 마친 상황에서 공동 선두 안시현이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우승을 결정지을 수 있는 버디 퍼트를 놓친 반면 박민지가 버디를 잡아 3인 연장전에 합류했다.
18번홀에서 반복된 연장전에선 박결이 혼자 파에 그쳐 1차전 탈락했다. 두 번째 연장전에서는 박민지가 2m 가량의 버디 퍼트를 실패했다. 완벽에 가까운 기회를 연결하지 못한 박민지였지만 연장 3차전에서도 흔들림 없이 세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렸고 안시현의 5m 넘는 버디 퍼트가 빗나가자 이번엔 3m 가량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박민지는 신인임에도 88CC 유망주 지원 프로그램인 ‘88 꿈나무’에 뽑혀 지난해까지 훈련한 이 골프장이 낯설지 않다. 우승상금 1억8,000만원을 받은 그는 상금 1위(1억8,354만원)에 올랐고 신인왕 포인트에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선배들과 동반하면서 여유로움과 코스공략 등을 배울 수 있었다”는 그는 “신인왕과 1승이 올해 목표였는데 2승으로 올려야겠다”며 웃었다.
투어 3년차 박결은 통산 4번째 준우승을 보탰고 국가대표 아마추어 이소미(18)가 윤슬아(31)와 함께 공동 4위(8언더파)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2주간 미국 무대를 비운 장하나는 6위(7언더파)로 마쳤고 2주 연속 우승을 노린 이정은(21·토니모리)은 7위(6언더파)를 차지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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