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인사들의 정치적 입장 표명에 비난과 탄압이 가해지고 있다. 영향력을 넓게 미치는 유명인이지만 공직자가 아니기에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 문제는 없지만 공식적으로나 SNS상으로나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는 데에 공격과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다. 문화계 인사들의 정치적 표현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수 전인권은 지난 이틀 난데없이 정치권 한가운데로 소환됐다. 그는 5월 공연을 앞두고 지난 18일 간담회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측에서 전인권을 ‘적폐가수’라고 비난했다. 불과 얼마 전 광화문 광장에 나와 ‘촛불시위’에서 노래했던 그가 하루아침에 촛불시위 지지 세력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고, 이를 정치권이 놓치지 않았다. 정치권의 네거티브 공세에, 환갑이 넘도록 평생 노래만 해온 가수가 하루아침에 ‘정치의 아이콘’이 돼 버리는 촌극이 펼쳐졌다.
대선후보를 공개 지지했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이 무산되는 경우도 생겼다. 요리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지난 1월 KBS 1TV ‘아침마당’ 목요특강 코너에 출연을 섭외 받았지만 무산됐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SNS를 통해 주장했다. 이에 KBS는 대선을 앞두고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여야 관련 인물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황씨는 지난 2012년 대선 때 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였던 송해가 박근혜 당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나 방송을 계속했다고 지적했다.
국정농단의 연장선상이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놀란 문화계가 이번 대선에서는 몸을 사린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예년에 비해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문화계 인사들의 숫자가 적고, 이른바 ‘스타급’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지지자 명단’에 오른 일부 인사 중에는 “나는 지지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경우도 생겼다. 대선 후보 공개 지지자 중에는 ‘태양의 후예’의 김은숙 작가와 소설가 공지영, ‘미생’의 윤태호 작가, 영화감독 임순례와 장항준, 가수 이은미와 신대철 정도가 ‘핫’한 인물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20일 “연예인의 정치적 입장 표명에 대해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수용자들이 이를 꺼리는 경향이 강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전에는 민주화가 덜 된 데다, 정치적 입장 표명이 사익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자제한 측면도 있다”며 “하지만 이제는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해진 상황에서 유명인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필요한 과정일 수 있고, 개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자유롭게 밝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인턴기자 s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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