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칼로 무장하고 쳐들어온 적군에 맞서며 유혈이 낭자하고 승자와 패자가 명확게 드러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해온 전쟁의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규모로 그리고 파편처럼 전쟁이 벌어진다. 무인정찰기·전투드론 등 최첨단 장비가 동원되기도 하며 사이버 전쟁도 새롭게 나타난 전쟁의 종류다.
저자인 헤어프리트 뮌클러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 정치학 교수는 이 같은 현대의 전쟁을 ‘파편화된 전쟁’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중동 및 서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전쟁, 발칸 및 우크라이나 등 해체된 동구 공산주의 국가 지역에서의 내전과 게릴라전, 9ㆍ11 테러에서 최근 이슬람국가(IS)의 테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최근 경험한 전쟁에 주목했다. 이 전쟁의 형태는 마치 파편처럼 불규칙적이고 탈고전적 전쟁 유형을 띤다. 즉 영토를 가진 대칭적 국가들이 정규군을 동원해 치르는 전쟁이 아닌 전쟁폭력 ‘진화’의 결과로 생겨난 새로운 전쟁 모델이라는 것.
이 책에서 새로운 전쟁의 모델은 ‘전쟁의 민영화’, ‘전쟁폭력의 비대칭화’, ‘전쟁의 탈군사화’ 등 3가지 특징을 지니는 것으로 규정된다. ‘전쟁의 민영화’는 더 이상은 국가가 전쟁의 독점자가 아니며 민간 군사회사 등이 전쟁의 주요 주체라는 것이고, ‘전쟁폭력의 비대칭화’는 전쟁의 주체의 위세가 거의 대칭적이었던 과거의 전쟁과 달리 현재의 전쟁에서는 주체 간 비대칭성이 크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쟁의 탈군사화’는 전쟁 수행을 더는 정규군인이 독점하지 않으며 또 목표물도 국가의 군사적 시설만이 아닌 민간인이나 정보통신시설 등 민간 인프라로 변화됐음을 의미한다.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새로운 전쟁에는 선전포고도 평화협정도 없다. 대신 성명과 회담이 반복되고, 그에 따라 폭력 사용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축소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격화될 뿐이다. 또 이와 같은 전쟁들은 언제 시작됐는지 확인할 수 없듯 전쟁의 끝 또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까닭에 우리는 늘 전쟁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서는 “국가 간 전쟁이 사라지면 ‘영원한 평화’가 올 것”이라고 한 칸트의 말의 비현실성을 통렬하게 비판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종식된 것은 국가 간 대규모 전쟁의 시대지, 전쟁 시대 전반은 아니며, 현 인류 사회에서 전쟁폭력의 강도나 그 결과의 참담함은 국가 간 전쟁이라는 모델에 맞지 않을 뿐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자의 눈엔 ‘영원한 평화’는 요원할 뿐이다. 2만2,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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