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는 ‘기성정당의 몰락’과 ‘비주류의 부상’으로 요약된다. 지난 1958년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를 기반으로 한 제5공화국 헌법을 채택한 뒤 번갈아 집권해온 사회당과 공화당은 무기력한 국정운영과 부패 스캔들로 결선에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들이 사라진 자리는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며 대권에 첫 도전장을 내민 중도정치단체 전진당을 이끄는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장관과 반이민·포퓰리즘 바람을 타고 인기를 얻은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 등 비주류 후보들이 차지했다.
◇59년 만에 결선진출 좌절된 거대 양당=1년 전까지만 해도 올해 프랑스 대선은 전통 강자인 공화당과 사회당, 극우 국민전선을 중심으로 2012년 대선과 유사한 구도로 전개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하지만 수도 파리에서 일어난 연쇄 테러와 높은 청년 실업률로 국정지지율이 4%대로 곤두박질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대선 불출마 선언에도 유권자들이 여전히 사회당을 외면하며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흐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때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혔던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가 아내를 보좌관으로 등록해 세비를 빼돌렸다는 스캔들이 연초부터 불거지며 유권자들의 실망과 피로는 결국 폭발했다.
마크롱 전 장관과 르펜 대표는 1월 말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1·2위를 차지하며 대세를 굳히기 시작했다. 특히 올랑드 정권의 경제장관 출신으로 사회당을 박차고 나와 ‘제3지대’를 표방한 ‘30대 기수’ 마크롱 전 장관은 기존 거대정당에 실망한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아 대선 1차 투표에서 23.86%(개표율 97% 현재)를 얻으며 선두를 꿰찼다. 21.43%를 득표한 르펜 대표도 테러 위협으로 강해진 반이민 정서를 건드리면서도 나치 옹호발언을 자제하는 등 극우 색채를 지우는 전략으로 대권 도전 두 번 만에 결선에 진출했다.
◇극과 극 공약…결선 결과 따라 달라질 프랑스=프랑스의 운명은 다음달 7일 치러질 결선투표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은행·경제장관 출신의 ‘엘리트’ 마크롱 후보의 정책은 친유럽연합(EU)·친기업으로 요약된다. 그는 EU 통합을 위한 프랑스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외국인포용정책·시장개방을 유지하는 등 급진적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해 경제를 살리자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또 주당 35시간인 노동시간을 유지하더라도 기업과 노조의 합의에 따라 유연성을 확대하고 법인세를 인하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르펜 후보는 당선 즉시 EU와 가입조건을 재협상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투표를 시행해 EU 탈퇴까지 추진할 수 있다는 반(反)EU파다. 프랑스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유로화 대신 프랑화를 재도입해 통화주권을 찾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프랑스로 유입되는 이민자를 80% 줄이고 자국 극빈층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자는 공약도 내걸었다.
◇마크롱 당선 유력하지만 르펜 대역전 가능성도=결선에서는 두 후보 중 마크롱 전 장관의 승리가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극우 후보의 당선만은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다른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피용 전 총리와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전 장관은 결선 진출 좌절이 확정되자 곧바로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며 극우 대통령 저지에 힘을 보탰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한다. 해리스인터랙티브는 출구조사 발표 직후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전 장관이 르펜 대표를 64대36으로 누르고 대통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 소프라 스테리아도 이날 당장 결선투표가 실시될 경우 마크롱 전 장관이 62%를 얻어 르펜 대표를 꺾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결선투표장에 나오지 않거나 르펜 지지로 돌아설 경우 대이변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지 매체인 프랑스24는 마크롱 전 장관의 1차 투표 득표율이 2002년 이후 대선 1위 후보로는 가장 낮은 수치라며 이는 절대적 지지층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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