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사진) 엠케이트렌드 대표는 ‘애플와치’와 ‘갤럭시와치’를 양손에 차고 다닌다. 애플와치는 한국에 나오기도 전 중국에서 선구입했다. 현재 쓰고 있는 아이폰도 한국에 수입되기 전 해외에서 확보한 진정한 얼리 어답터다. 그의 사무실에는 맥 컴퓨터가 세 개나 있을 정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20대 젊은 직원들보다 더 빨리 시작했다.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모두 섭렵해 평소 직원들과는 SNS로 소통한다. 그렇다고 그는 정보기술(IT) 업체 대표가 아니다. 패션 업체 최고경영자(CEO)다.
엠케이트렌드는 지난 1990년대에 풍미했던 캐주얼 브랜드 ‘TBJ’를 시작으로 ‘앤듀’ ‘버커루’ ‘NBA’에 이어 지난해 ‘LPGA 골프웨어’를 추가하며 라인업을 확장한 3,000억원대 규모의 한국 대표 패션 기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GAP’ ‘DKNY’ ‘아베크롬비’ 등을 제작하는 최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인 한세실업의 품에 안김으로써 탄탄한 백그라운드를 확보, 최근 재조명을 받고 있다. “‘패션하는 사람’은 트렌드에 앞서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중 하나. 김 대표를 최근 서울 논현동 본사에서 만났다.
<자신을 가두지 않으면 패피로 거듭날 수 있어>
인터뷰 당일 우영미 디자이너의 ‘솔리드 옴므’ 슈트를 입은 김 대표는 패션 회사 대표답게 남다른 패션 감각을 드러냈다. 슬림핏으로 젊은 층이 선호하는 솔리드 옴므 슈트는 웬만큼 몸매(?)가 되지 않으면 50대에 소화할 수 없는 브랜드지만 그는 맞춤 슈트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라인을 과시했다. 그는 “패션 회사 운영자로서 트렌디한 스타일을 연출하는 데 거부감이 없으려면 평소 체형관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소화할 수 있기 위해 부단히 운동을 한다”고 귀띔했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뭘까. “시간과 장소·목적(T P O), 즉 상황과 격식에 맞게 스타일링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 공식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패션 피플이 될 수 있는 거죠. 나이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는 것도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이에요. 찢어진 청바지도 입고 다니고 한정판 슈즈를 사기 위해 줄을 서기도 하며 과감한 컬러로 포인트도 주고 화려한 스카프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누가 입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입느냐가 중요한 거죠.”
<‘개성=트렌드’ 소통하는 기업만 생존>
1994년 엠케이트렌드의 전신인 ‘주식회사 TBJ’에 합류한 지 23년째. 사실상 인생의 반을 패션업에 몸담아왔지만 요즘처럼 경영하기 어려운 적도 없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경기불황은 계속되고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유행에 민감하지만 유행이 없는 게 트렌드라는 것이다. 그만큼 전체 파이는 그대로인데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라는 점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적중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김 대표는 “큰 유행의 흐름을 맹목적으로 좇아가던 시대가 있었다. 하나같이 ‘아베크롬비 스타일’을 추구한 적도 있고 모두의 등에 ‘이스트백’ 배낭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개성=트렌드’인 시대가 열렸다. 모두가 패션 피플이며 어느 때보다 패션에 관심이 많다. 글로벌 패션쇼를 손안에서 생중계로 보는 환경이 열렸으니 소비자들이 트렌드를 쉽게 알고 자신의 스타일로 접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기업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바일 세상이 열리면서 트렌드를 공부하기 위해 굳이 해외 패션쇼를 찾아다니는 일도 많이 없어졌다. 대신 김 대표는 경쟁 브랜드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현장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2박3일간 50개 매장씩 전국 순회를 하는 일이 늘었다.
“한국 선수가 미국 LPGA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LPGA 한국팬이 많다 보니 LPGA 골프 브랜드에 대한 협회 측의 관심은 상당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골프웨어 시장은 일본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큽니다. 우리는 골프웨어를 기능적인 옷이라는 개념을 넘어 패션 브랜드로 받아들이고 있죠. 특히 여성 골퍼들의 경우 ‘스코어는 져도, 패션에서는 질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정도로 패션에 민감합니다.”
제품이 처음 나왔을 때 미국 LPGA골프협회 관계자들은 ‘매직(magic), 판타스틱(fantastic), 퍼펙트(perfect)’를 외쳐댔다. 김 대표는 “주요 백화점에 잇따라 둥지를 튼 LPGA 골프웨어는 벌써 상위 매출권에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 복 많은 CEO “모든 라인이 효자”>
김 대표는 회사 설립 초창기인 1994년도 TBJ에 합류해 회사를 3,000억원대 규모로 키운 주인공이다. 당시 창업자 김상택 전 대표와 함께 그는 경영·마케팅 등 시스템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여기에 더해 과거 실리콘밸리에서 글로벌 소싱처를 개발하던 노하우를 접목시켜 동대문 브랜드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해외 대량 생산의 기반을 구축했다. TBJ는 장수 브랜드지만 최근에는 아이돌그룹 ‘비투비’를 모델로 잘 발탁한 덕택에 10~20대 젊은 층에게는 여전히 새로운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엠케이트렌드는 브랜드 복도 많다. 2011년 론칭한 멀티 스트리트 캐주얼 NBA 브랜드는 한국·중국에서 쌍끌이로 엠케이트렌드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NBA와 라이선스 재계약을 체결해 오는 2025년까지 안정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2014년 중국 론칭 후 현재 140개 매장을 오픈하며 5년 만에 700억원대 브랜드로 우뚝 섰으며 중국에서는 ‘NBA 키즈’ 라이선스까지 취득해 키즈 라인도 단독으로 냈다.
엠케이트렌드가 걸어온 길에 김 대표가 항상 있었지만 그는 “지금껏 운이 좋았다”는 말로 ‘브랜드의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삶’을 대체했다.
직원들은 김 대표가 사내 패션 문화를 선도하는 패션 리더라는 점에 이견을 달지 않는다. 직원들은 그와 패션 감각을 경쟁하고 감도를 높여간다. 김 대표는 포상제도를 통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트렌드와 소비자 조사를 진행하고 사내 SNS에 이를 공개해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과의 자유로운 소통으로 자연스럽게 젊은 문화에 노출돼 있다”면서 “평소 패션 감각과 젊음의 비결은 결국 즐겁게 일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며 웃었다. /심희정기자 yvette@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1957년생 △1982년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1982~1989년 만도기계 기술제휴부 △1990~1993년 제벡 아메리카(Xebec America Inc, 새너제이 캘리포니아) △1994년 엠케이트렌드 상무 △2011년 엠케이트렌드 대표이사 부사장 △2017년~ 엠케이트렌드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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