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전직 조종사들이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면 교육훈련비를 회사에 반납하게 한 규정이 ‘노예계약’과 같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24일 서울남부지법에 따르면 대한항공에 다니다 퇴사한 김모씨 등 조종사 15명이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 및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1심에서 재판부는 쟁점인 계약 자체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다만, 급식비 등 임금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비용까지 훈련비에 포함한 것은 과하므로 조종사들은 이를 제외한 순수 훈련비를 대한항공 측에 반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조종사 15명 중 12명은 비행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대한항공에 입사예정자로 채용돼 초중등 훈련비용 약 1억원을 자비로 부담했다. 고등과정 훈련비용 1억7,500만원은 10년 근속 시 상환의무를 면제하는 조건으로 대한항공이 대납했다. 경력직 조종사 3명은 대한항공에 채용돼 부기장으로 근무하기 전 제트과정 등 훈련비용 1억8,000만원을 10년 근속 조건으로 회사가 대납하는 방식으로 계약했다. 그러나 이들 조종사는 근속 연수를 채우지 못한 채 6년∼8년을 일하다 퇴사했고, 대한항공은 근속 기간에 따라 남은 교육훈련비에 기종전환 훈련비를 더해 1인당 2,700만원∼1억1,800만원까지 반납하게 했다.
조종사들은 “대한항공이 교육비를 임의로 정했고 10년간 근속하지 않으면 일시에 토해 내도록 하는 것은 노예계약”이라고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고, 대한항공은 “교육훈련비를 자부담하는 계약은 교육훈련비 대여신청서와 연대보증서를 통해 재차 의사를 확인한 사안”이라며 맞섰다.
재판부는 “훈련비 상환이 면제되는 근무 기간을 10년으로 정한 것과 조종훈련생인 원고들이 고등과정 훈련비용을 부담하도록 정한 훈련계약이 현저하게 공정성을 잃은 불공정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사실상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고등훈련비 상당의 대여금 상환규정은 비행훈련에 큰 비용을 지출한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아무런 비용부담 없이 비행훈련을 마치고 조종사로 근무하려는 원고들의 상호이익을 위해 마련된 합리적 약정이라는 것이다. 다만, 대한항공이 임금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일반복리후생비와 급여비, 여비 교통비, 생활지원비 등의 명목까지 조종사들에게 반납하도록 한 것은 근로기준법 제20조를 위반해 무효로 판단했다. 기종전환 훈련비에 대해서는 대한항공이 산정한 금액 모두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신입 조종사 12명은 1억7,500만원 중 1억4,900만원을, 경력직 조종사 3명은 훈련비 1억8,000만원 중 1억4,900만원을 반납해야 한다.
대한항공 측은 “부조종사의 초기 훈련비와 기종전환 훈련비에 대해서는 회사가 전액 승소했고, 고등과정 비행교육 훈련비 역시 약 86%가 인정된 것”이라며 “판결문이 공식 접수되면 항소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종사 측 역시 “훈련비 산정 근거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미진했다”며 항소할 계획이다.
한편, 대한항공 전직 조종사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비슷한 소송이 줄줄이 법원에 계류 중이다. 조종사 23명이 제기한 7건이 남아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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