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없다. ‘4월 위기설’이 고조된 한 달 내내 거짓보다 참 쪽으로 굳어진 명제다. 미국 칼빈슨 항공모함 전단의 한반도행 이동 경로가 오락가락한 상황에서나 미중 정상회담 후 불쑥 나온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더라’는 발언에 두 나라가 석연찮은 태도로 일관했을 때도 한국은 없었다.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에서 한국이 안중에도 없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중국 국영매체 환구시보가 지난 22일 미국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정밀) 공격은 외교적 수단으로 반대할 것이라며 사실상 묵인을 시사한 와중에도 한국은 없었다. 급기야 북한 인민군 창건 85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24일 미일중 정상이 연쇄 전화 통화를 하고 북한의 김정은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사이 우려하던 ‘코리아 패싱(한국 건너뛰기)’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3국 전화 통화에서 우리 수뇌부는 완전히 빠졌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대선을 치르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당사국이면서 위기 때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한국에 대한 사전 통보나 황 대행에게 전화 한 통 없었다는 사실은 한국이 무지렁이 취급을 받고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의 북핵시설 타격을 받아들인다며 중국이 그린 일종의 레드라인은 북한에 보내는 강한 압박 메시지임은 분명하지만 한국이 바라는 군사충돌 없는 위기 해소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미국이 중국의 묵인 아래 정밀타격할 경우 북한은 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로 보복할 것이고 우리 군은 곧바로 응징에 나설 것이다. 확전이다. 북 지휘부의 오판으로 전면전이 벌어지면 사태를 예측하기 힘들다. 휴전선 일대에 배치된 장사정포의 화력이 불과 수 초 만에 50㎞ 떨어진 서울과 수도권에 닿는다. 혹자는 곧바로 응전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개전 당일에만 수십만 명의 민간인 인명피해가 난 뒤다. 누구나 다 아는 선제타격론의 딜레마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빌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 핵시설 정밀타격을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당시 김영삼 정부의 극력 반대에 밀려 공격 카드를 접었다. 지금 북의 핵·미사일 능력을 감안하면 그때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달 말 취임 100일을 앞두고 지지율 상승이 절실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구사하는 ‘역 벼랑 끝 전술’과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한국이 왕따를 당하는 상황이 한미 동맹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국익을 위해서는 만사를 제쳐 둘 수 있는 것이 냉혹한 국제사회다. 북한의 도발이 멈추지 않고 이에 맞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본토 타격을 위협받는 상황을 조속히 끝내고자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조급함이 커질수록 한반도 위기는 증폭된다. 견고한 한미 동맹에 대해 고담준론(高談峻論)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명분도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에 앞서 자리할 수 없다는 우리의 레드라인을 설정할 시기다. 보름 뒤 결정될 새 대통령이 외교무대에서 먼저 재확인해야 할 것도 ‘한국은 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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