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우수도서 선정을 문제 삼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을 사직시키라고 지시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우수도서로 선정된 도서가 정부와 뜻을 달리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에서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는 문화체육관광부 김종덕 전 장관과 정관주 전 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박민권 전 문체부 1차관에 따르면 2014년 2월께 보수 성향의 인터넷 매체가 ‘문체부가 좌파·종북성향 도서를 우수도서로 선정했다’고 보도하자 청와대에서 진흥원 원장의 사표를 받아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진술에 따르면 박 전 차관은 우수도서 선정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으나 유진룡 당시 장관은 “김기춘 실장이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고 하니 진흥원장의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했다. 박 전 차관은 진흥원장으로부터 사직서를 받았지만 실제로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박 전 차관에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이유를 묻자 그는 “당시 유 전 장관이 의사결정을 주도했기 때문에 국장이었던 나는 사표를 받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또 박 전 차관은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 작성을 담당하던 서기관 오모씨가 다른 부서로 보내달라고 호소했으나 들어주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후배가 겪는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했다”며 “(오씨가) 다른 곳에 가면 블랙리스트 업무를 맡게 될 다른 동료가 힘들어질 수 있으니 혼자 끝내는 게 좋겠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조은지 인턴기자 ej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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