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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봄날은 간다

- 박현作





월출산 그늘을 지날 즈음

은밀한 달이 발목을 잡아

지친 몸 뉘러 들어간 여각

베니어합판 꽃무늬 너머

수줍은 소리 들리네

사부작사부작

벚꽃이 피네

몸이 연주하는 화음에 취한

부끄러운 새벽이 실눈 뜰 무렵

짐 챙겨 여각 앞을 나서려 보니

세상을 다 얻은 청춘이

연분홍 치마를 흥얼거리네

우르르우, 르, 르………

벚꽃이 지네.

바위도 꿈틀 엉덩이 고쳐 앉는 봄 아니던가요? 삭정이도 울끈 힘쓰고 보는 봄 아닌가요? 아흔 고개 넘는 할머니 볼에도 복사빛 일렁이는 봄 아닌가요? 허름한 여각 삐걱거리는 마루가 걱정스러웠지만, 왕벚나무호텔 수만 개 꽃방에는 이미 벌과 나비로 다 찼던 걸요. 단단한 블록벽인 줄 알았는데 베니어합판이었군요. 성능 좋은 울림판이었군요. 서툰 연주였지만 최선을 다했어요. 볼우물에 꽃잎 붙은 달님이 창 너머 속삭이더군요. ‘봄 사랑 없이 어찌 여름 염천을 건너리. 찰나의 사랑도 없이 어찌 영겁의 우주를 건너리.’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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