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니스 라켓을 잡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크기와 달리 무게가 가벼웠다. 테니스 코트도 생각보다 아담했다. 가로 10m 정도에 세로는 20m. 그마저도 절반에서만 뛰어다닌단다. 축구장이나 야구장은 물론, 농구장과도 비교할 크기가 아니었다. ‘별로 안 힘들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몸이라도 제대로 풀었으면 하루 종일 겪었던 피곤함이 덜 했으리라. “테니스는 전신 운동이에요.” 짙은 선글라스를 쓴 탓에 코치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입가에 맺힌 웃음은 기자를 반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2시간의 수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테니스의 대중적인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과 비교하면 걸음마 수준으로 여겨졌다. 스타 선수가 없는 것이 큰 이유였다. 2000년과 2007년 US오픈에서 16강에 올랐던 이형택(41·은퇴)이 전부였을 정도다. 과거 귀족과 성직자가 즐겼던 스포츠인 만큼 ‘돈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것’이라는 편견까지 있었다.
최근 들어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한국 남자 테니스의 희망으로 불리는 정현(21·한체대)이 세계랭킹 100위권을 오가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 예능 프로그램 등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했다. 덕분에 대중들의 인지도는 조금씩 올라가는 추세다. 저렴한 가격으로 테니스를 배울 수 있는 트레이닝 센터 역시 곳곳에서 문을 열고 있다.
기자 주변에서도 변화는 감지됐다. 테니스를 시작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한 번 배워볼까’하는 유혹이 다가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주변의 평가도 기자를 부추겼다.
◇15(fifteen), 도전 시작
서초구 잠원한강공원 내에 위치한 V 테니스장을 찾았다. 클레이(흙) 코트 6면이 나란히 마련된 꽤 큰 규모였다. 평일 오전임에도 코트 3면에서는 레슨이 이뤄지고 있었다.
수업에 앞서 테니스의 점수 체계부터 배웠다. 테니스는 15(fifteen), 30(thirty), 40(forty) 순으로 점수가 올라간다. 40에서 한 점을 더 따내면 승리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4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다. 40:40으로 동점인 경우(듀스)는 예외다. 이때는 2점을 연속으로 따내야 이길 수 있다. 그 외에도 간단한 규칙과 용어를 숙지한 뒤 코트로 나섰다. 마음만큼은 이미 ‘테니스의 황제’라 불리는 로저 페더러(36·스위스) 못지않았다.
함께 간 여기자와 짝을 이뤘다. 테니스공과 친해지는 게 우선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테니스 라켓을 사용해서 공을 바닥에 튀겨보세요. 위로 튀기면서 감각을 느껴보는 것도 좋아요. 공에 익숙해져야 긴장이 좀 풀립니다.”
날씨가 맑아서였을까.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어렵지 않게 공을 다룰 수 있었다. 고작해야 바닥에 공을 튀기는 동작인데, 걸음마 떼놓고 마라톤을 완주한 것 마냥 좋아했다.
◇30(thirty),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테니스의 타구 동작은 모두 ‘스트로크(stroke)’라고 부른다. ‘그라운드(ground) 스트로크’는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동작이다. 포핸드(라켓을 쥔 팔 방향으로 오는 공을 치는 것)와 백핸드(라켓을 쥔 팔 반대 방향으로 오는 공을 치는 것)를 모두 배워보기로 했다.
코트 절반을 다시 반으로 쪼개 그 안에서 여기자와 공을 주고받았다. 잠깐 헤맨다 싶더니 곧 적응하기 시작했다.
“두 분 다 아주 잘하시는데요. 계속하세요. 테니스 감각이 있으세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자신감이 붙었다. 스트로크의 정식 자세를 배운 것이 아니라 공을 주고받은 것뿐이라는 사실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당장에라도 코트 전체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숨겨진 재능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깐, 코치의 시범이 이어졌다.
“네트를 가운데 두고 스트로크 쳐볼 건데요, 그 전에 저희가 한 번 보여드릴게요.”
눈앞에서 본 코치들의 스트로크는 과장을 살짝 보태 ‘3D 영화’ 같았다. 테니스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고, 그 공을 치는 코치들의 스트로크는 포핸드와 백핸드를 가리지 않았다. 아까의 칭찬은 우릴 춤추게 하려는 코치의 기술이었음이 분명했다.
◇40(forty), 좌절의 시작
“‘하나’ 하면 자세를 낮추고, ‘둘’ 하면 왼발을 오른발과 직각이 되게 내미세요. ‘셋’ 하면 힘차게 스윙하는 겁니다.”
발의 위치부터 팔의 각도, 스윙 방법까지. 코치는 스트로크의 기초를 무척 꼼꼼하게 알려줬다. 30분이 넘도록 스텝을 밟고 라켓을 휘둘렀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기분 좋게 맑았던 날씨는 땀을 흘리게 하는 원흉이 돼 있었다.
공을 직접 치는 과정은 더 어려웠다. 스텝이 꼬이는 건 애교였다. 힘을 빼고 치면 네트에 걸렸고, 강도를 세게 하면 여지없는 ‘홈런’이었다.
“감을 잡아야 해요, 감을. 공이 원하는 곳을 잘 날아갈 때의 스트로크 느낌을 기억하세요.”
사과 상자 크기의 통 안에 놓인 공을 다 쓸 때까지 코치가 강조한 ‘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30분 정도의 연습으로 익숙해지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다. 숨겨진 재능이라니. 그런 건 애초부터 없었다. 반복숙달만이 해답이었다.
◇45(game point), “어때요, 참 쉽죠?”
게임을 시작하는 첫 스트로크인 ‘서비스’와 공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넘기는 ‘발리’, 높이 솟은 공을 내려치는 ‘스매시’ 등도 차근차근 배워야 했다. 문제는 체력. 하루에 그 기술들을 다 배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코치의 시범을 보고 따라 해보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어릴 적 TV에서 미술을 알려주던 밥 아저씨의 “어때요, 참 쉽죠?”라는 명언이 생각났다. 코치의 화려한 스트로크는 흉내를 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박수로 대신했다.
“3달 정도 꾸준히 배우면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일 거예요. 뭐든 하루 만에 익숙해지는 게 어딨겠어요.”
코치의 말이 맞다. 테니스 역시 꾸준함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몸은 힘들다. 처음 며칠은 근육통과 피곤함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참아내자. 건강한 신체와 능숙한 테니스 실력이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라켓으로 공을 때려내는 타격감에 흠뻑 빠진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정순구·이종호·정가람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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