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저녁 JTBC와 중앙일보·한국정치학회가 공동주최한 토론까지 합쳐 네 번의 대선 TV토론이 있었다. 앞으로 오는 5월9일 선거일 전까지 두 번 정도의 TV토론이 남아 있으나 현재까지 나타난 토론의 수준과 격(格)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후보들 모두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비교우위를 강조하는 ‘포지티브’ 방식이 아니라 상대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 국민 10명 중 4명 가까이 봤다는 지난 23일 있었던 3차 TV토론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쟁점이 된 ‘주적(主敵)’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돼지흥분제’와 ‘갑철수’ 등 몇몇 논란은 아이들이 볼까 두렵고 민망할 정도였다. 당연히 국민들 사이에서는 “유치함의 극을 달렸다” “이게 토론이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문제는 대선 TV토론이 앞으로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낯선 5자 토론 형식도 문제지만 토론 참여 후보의 발상이나 입장의 극적인 전환을 하지 않으면 결국 이런 방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나마 나았다는 4차 TV토론은 이전 토론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후보들이 ‘네거티브’를 자제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이번에는 ‘내용’이 없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자리 해법과 북핵 책임론 등을 놓고 후보 간 정책 대결도 있었지만 제한된 시간과 토론형식의 제약 등으로 논의가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대선 TV토론이 후보들의 네거티브 아니면 5자 토론으로 한계에 봉착하며 ‘덫’에 갇히고 만 것이다.
TV 대선토론은 매스미디어 시대의 주요한 공론의 장(場)이다. 선거의 선택지가 된 후보들은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대리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진단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또 토론과정을 지켜보는 국민의 평가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론(公論)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부의 주요 국정 기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현재 판세대로라면 차기 정부는 여소야대의 국면에서 출범하는 소수파 정부가 불가피하다. 다자 구도로 치러진 지난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얻은 표는 고작 36.6%였다. 결국 여소야대로 출범하게 된 노태우 정부는 강한 야당의 견제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집권 초반의 중요한 시기를 허송세월했다. 이 때문에 집권 2년 후인 1990년 성향과 뿌리가 전혀 다른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3당이 합당하는 정계개편이 촉발된다.
그 당시보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국회의 협조 여부는 더욱 중요해졌다. 어떻게 보면 국회의 입법협조가 없으면 국정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다. 다수당으로 출발했던 박근혜 정부조차 국회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대표적 반면교사다. 결국 현재 정치 구도라면 차기 정부가 성공적으로 출범하고 꾸려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 사안에 대해 선거공간을 이용한 공론화(公論化) 과정이 더욱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선 TV토론은 좀 더 생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네거티브를 이어가서도 5자 토론의 한계에 기대 쟁점을 피해가거나 흐려서도 안 된다. 또 토론문화에 취약한 우리 사회와 미래세대에게 새로운 전범(典範)을 보인다는 차원에서 대선후보들도 성숙한 자세로 토론에 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의 품격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jh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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