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월화수목금금금’.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데 왜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걸까. 기업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은 쌓여가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 시간도 없이 일에 치이고 있다. 가끔 지인들과 갖는 술자리가 그들의 유일한 해소 방법이라는 현실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직장인들에게도 ‘아지트’가 필요하다. 휴식을 취하며 피로를 풀 곳이 절실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서울경제신문 기자들이 각종 아지트를 직접 찾아가봤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힐링’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쿵! 쿵! 쿵! 쿵쿵!”
심장을 울리는 비트 소리. 클럽의 밤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음악을 즐기려는 이들로 가득하다.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부터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까지. 모두가 비트에 몸을 맡긴 채 마음 가는 대로 몸을 흔든다. 때로는 느리고, 또 빠르게. 춤을 추는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곳곳에 설치된 대형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쉬지 않고 변한다. 노래 하나를 듣다가 잠깐 한눈을 팔면 어느 틈엔가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다른 음악이 귀를 감싸고 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디제이(DJ) 덕분이다. 보통 클럽 무대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디제잉 부스. 이 곳에서 디제잉 머신으로 음악을 다루는 이들을 우리는 DJ라고 부른다.
엘피(LP)를 사용해 디제잉을 하던 시절, DJ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수백 장의 엘피판을 들고 다니며 현란한 기술로 음악을 다루는 모습에 일반인들은 쉽게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디지털 음원과 30만원 대의 장비만 갖춰도 디제잉을 할 수 있는 시대다. 클럽 문화가 퍼지면서 공연할 곳이 많아진데다 장비까지 발전을 거듭한 덕분이다.
디제잉을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곳도 늘고 있다. 직업으로 디제이를 꿈꾸는 학생은 물론, 취미 삼아 배워보려는 이들까지 그 대상은 다양하다. 특히 직장인들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퇴근 후 클럽을 찾던 직장인들이 아마추어 디제이로 나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관련기사▶‘퇴근 후 반란?’ 장대리 박과장의 수상한 취미활동)
한두 달만 배워도 기본적인 디제잉이 가능해 쉽게 흥미를 붙일 수 있다는 점도 인기의 비결이다. 국내 최초의 직장인 디제잉 커뮤니티인 ‘퇴근 후 디제잉’에는 2,000명이 넘는 회원들이 가입했을 정도다. 지난 2015년 7월 개설 당시만 해도 유령 공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놀랍다. (관련기사 ▶‘7년차 영업사원 그는 왜 디제잉에 빠졌을까’)
어떤 매력이 직장인들을 디제잉의 세계로 이끄는지 궁금했다. 기자가 직접 배워보기로 결심한 이유다. 지난 19일 저녁 7시, 서울 성동구의 한 파티룸에서 장규일(34) ‘퇴근 후 디제잉’ 대표를 만나 2시간 정도 수업을 받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지금부터 확인해보자.
◇걱정말아요 그대
호기롭게 나서긴 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디제잉이라니. 클럽에 가면 한 자리에서 소심하게 상체만 살짝 흔드는 게 전부다. 그런 기자가 직접 음악을 다루는 게 가능하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요새는 장비가 좋아져서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습니다.”
불안해하는 기자를 장 대표가 달랬다. 항상 멀리서만 보던 디제잉 기계가 눈앞에 있었다. 동그란 원판과 컨트롤러에 손을 갖다 댔다.
“여기 놓인 기계가 중형차 한 대 값이에요. 강남이나 이태원의 유명 클럽에서 쓰는 기계랑 비슷한 가격이죠.” 귀를 의심했다. 수 천 만원이라니. 댔던 손을 얼른 땠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 비싼 기계를 다루는 건 무리였다. 기본적인 용어라도 알아야 했다.
보통은 시디제이(CDJ)라는 기기로 디제잉을 한다. 과거의 턴테이블을 대신해 손쉽게 디제잉을 할 수 있는 기계다. 여러 조작 장치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둥근 원판이다. DJ 하면 한 손을 원판에 대고 다른 손은 헤드폰을 든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정식 명칭은 조그(JOG). 음악의 비트를 조절하는 장치다.
조그 주변에 위치한 버튼은 수 십 가지가 넘는다. 가장 자주 쓰는 것은 ‘재생’과 ‘CUE’ 버튼. 모두 알다시피 재생 버튼은 음악을 시작하고 멈추는 용도다. 생소할 수 있는 것은 CUE 버튼이다. 본인이 설정한 특정 지점으로 음악을 되돌릴 때 쓴다. 그 외에도 음악 크기를 조절하거나 각종 효과를 넣을 수 있는 버튼의 설명을 들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낯선 용어들이 갑자기 머릿속에 쏟아진 탓이다.
“일단 한 번 기계를 조작해보죠. 직접 해봐야 더 빨리 배울 겁니다.”
◇따로 노는 손과 귀
디제잉의 기본은 비트매칭이다. 비트와 비트를 동기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곡과 곡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서로 다른 두 비트를 맞추는 일이다. 말로 들으면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시범이 이어졌다.
흘러나온 노래는 박재범이 부른 ‘좋아(JOAH)’였다.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닥거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콜드플레이의 ‘a sky full of stars’가 흘러나온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한 곡처럼 느껴질 정도다.
김흥국의 ‘호랑나비’와 Drake의 ‘Hotline bling’을 비트매칭한 믹스셋 |
귀 한 쪽에 헤드폰을 쓰고 비트매칭 도전에 나섰다.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피커로 A 음악이 나가는 동안 헤드폰으로 B 음악을 들으면서 비트매칭을 빠르게 완성해야 한다. A 음악이 나오는 동시에 B 음악을 틀었을 때 마치 한 곡처럼 들리게끔 만드는 과정이다. 곡과 곡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돕기도 한다. 클럽에서 수십 개의 노래가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첫 도전인 만큼 멜로디를 줄이고 기본 4박자를 크게 틀었다. 조그를 돌려가며 비트를 맞춰보려 했지만 어려웠다. 한 귀로는 스피커 음악을, 다른 귀로는 헤드폰 음악을 들으며 비트매칭을 하는 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A 음악의 ‘쿵’ 소리에 B 음악의 ‘쿵’ 소리를 맞추면 “쿵! 쿵! 쿵! 쿵!”하는 깔끔한 4박자가 들린다. 기자는 디제이들이 흔히 말하는 ‘말타기’ 전문이었다. ‘다그닥’ 거리는 말발굽 소리처럼 A와 B 음악의 엇갈린 박자가 ‘쿵쿠쿵’ 하고 들렸다.
◇디제잉, 열정만큼 는다
20분 가까이 씨름한 끝에 비트매칭에 성공했다. 수 없이 말을 타고 나서야 두 음악의 비트가 맞아 떨어졌다. 쌓였던 스트레스가 쑥하고 내려갈 정도의 쾌감이 느껴진다.
“처음 배우는 분들은 비트매칭에서 많이 헤매세요. 시간도 오래 걸리죠. 한두 달 연습하면 비트매칭에 익숙해집니다. 잘 하는 디제이들은 몇 초 만에 비트매칭을 끝내요.”
비트매칭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창의성 대결. 본격적인 디제잉은 여기서부터다. 자연스럽게 두 곡을 연결하는 수준을 넘어 얼마나 획기적이고 창의적으로 서로 다른 곡들을 조화해내는가로 디제이의 명성이 갈린다. 트로트와 힙합을 섞거나, 80년대 가요와 요즘 음악을 연결하는 등 그 확장성은 무한하다.
실력은 열정만큼 는다. 아마추어 디제이들이 디제잉 할 수 있는 공간은 예전보다 훨씬 늘었다. 많은 음악을 듣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은 시작한 지 6개월만 되도 무대에 설 수 있다. 이제 막 비트매칭에 성공한 기자도 연말까지 노력하면 사람들 앞에서 디제잉을 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말에 파티하면 꼭 초대할게요. 그 때까지 연습 열심히 하시고 DJ로 데뷔하시죠.”
장 대표가 농담처럼 던진 이 말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전적으로 기자의 열정에 달렸다. 언젠가 DJ 부스에 서는 날을 꿈꾸며, 오늘도 마음속으로 ‘쿵쿵’하는 비트 소리를 따라 부른다.
/정순구·정가람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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