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잠시 어긋났다. 덕분에 포제션스트리트(possession street)라고 적혀 있는 안내 간판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한국어 없이 영어와 중국어·일본어로만 설명이 돼 있어 현지인 가이드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841년 영국이 홍콩 정복을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1840년 시작된 아편전쟁 후 1842년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 난징조약(南京條約)이 체결됐고 그 조약에 의거해 중국의 홍콩 섬이 영국에 영구 할양됐다.
난징조약 체결 이전 영국군은 바로 이곳을 시작으로 홍콩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소호(soho)·노호(noho)·포호(poho) 일대를 지칭하는 지역인 올드타운 센트럴 여행은 바로 영국군이 처음으로 홍콩에 발을 내디딘 포제션스트리트에서 시작됐다.
‘올드타운 센트럴’이라는 명칭은 홍콩관광청이 지난달 26일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한 이름이다. 1997년 7월1일 홍콩이 영국에서 다시 중국으로 반환되기까지 1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가 전파됐던 만큼, 올드타운 센트럴은 홍콩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포제션스트리트 안내 간판이 세워져 있는 곳 바로 옆에는 홍콩의 대표적 시민공원인 할리우드공원(hollywood road park)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군이 홍콩의 점령을 알리는 깃발을 꽂은 곳이지만 지금은 중국풍 공원으로 홍콩인들에게 휴식의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올드타운 센트럴이 매력적인 것은 아트갤러리·앤티크숍과 부티크 상점 등 홍콩 전통문화와 서양문화가 용광로처럼 녹아 공존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성인 남자 기준으로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30분이면 올드타운 센트럴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을 정도니 그리 큰 지역은 아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물과 가게 하나하나에 집중한다면 하루로 부족한 게 바로 이곳이다.
홍콩스러움을 좀 더 느끼고 싶으면 포제션스트리트에서 잠시만 눈을 돌리면 된다. 타이핑샨스트리트(tai ping shan street)로 향하는 길에는 붉은 색깔의 한자로 ‘승지(勝地)’라고 적혀 있는 사찰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영화배우 장국영이 생전에 자주 찾았다는 절이다. 화장된 장국영의 시신은 다른 곳에 있지만 사찰 안에 그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홍콩에서 화장을 하지 않은 시신을 묻는 것은 사실상 힘들어 대부분 화장이나 수목장을 택한다고 한다. 그러나 납골함 하나가 우리 돈으로 6억원에 이르니 이마저도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가이드가 귀띔했다.
타이핑샨스트리트로 향하는 계단 몇 개만 오르면 단숨에 현대적인 가게들로 풍경이 뒤바뀐다. 작지만 저마다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갤러리들, 찻집, 꽃 가게 등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반긴다.
잠시 찻집에서 휴식을 취한 후 계단을 따라 포호 지역으로 이동하면 처음으로 홍콩인들에게 공개된 블레이크가든(blake garden)을 만날 수 있다. 가든 안에는 100년이 넘은 고목들이 있어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올라가는 것이 지겨워질 무렵 래더스트리트(ladder street)가 손짓한다. 래더스트리트의 계단은 1841년에서 1850년도까지 돌로 만든 것으로, 홍콩의 오래된 유산이다. 총 350m에 달하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빗속에서 퍼지는 향냄새가 느껴졌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만모사원이다. 1847년에 지어진 이 사원은 학문의 신과 무예의 신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사람들은 소망과 바람을 담아 향을 피우고 신에게 소원을 적어 램프를 밝히기도 한다. 잠시 들러 다른 이들이 소원을 비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유를 가져보는 것만으로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포제션스트리트에서 출발한 여정은 할리우드로드가 이어지는 곳에서 마무리됐다. 할리우드로드에서 소호 길로 향하다 보면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PMQ(Police Married Quarters)가 나온다. 1951년에 지어진 경찰 학교 기숙사 건물이었던 PMQ는 2014년부터 예술을 끌어안았다. 신진 디자이너숍과 스튜디오, 레스토랑과 팝업스토어 등이 들어섰고 이후 복합문화공간으로 독특하면서도 활력 있는 장소의 대명사가 됐다.
홍콩 예술가들에게만 개방되다 전 세계 예술가들에까지 개방되면서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이 된 이곳에서는 언제 찾아오더라도 크고 작은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다. 항상 말이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사진제공=홍콩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