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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현모양처·열녀 껍데기 벗겨내니 욕망이 보이네

■악녀의 재구성(홍나래 외 지음, 들녘 펴냄)





여성, 하위계급, 성적 소수자 등 약자들의 욕망은 왜곡되거나 기묘하게 일그러진 것으로 그려지곤 한다.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를 고수하기 위해 약자들의 욕망을 제한하는 데다, 용기를 내 이를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녀의 재구성’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우리 고전 속에서 어떻게 왜곡됐는지를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다뤘는데, 내용 수위나 흥미진진하기가 ‘막장 드라마’를 능가할 정도다. 특히 이 책은 고전 속에 묘사되는 기묘한 여인들은 물론이고 미화된 현모양처, 열녀, 효녀들조차 그들의 은밀한 내면의 욕망에 주목했다.

우선 양사언과 그 어머니에 대한 얘기가 흥미롭다. 역사 속의 양사언은 한석봉에 견줄만한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자 청렴한 관료이며, 그의 어머니는 대표적인 현모양처였다. 그러나 설화 속에서의 얘기는 사뭇 다르다. 양사언의 어머니는 서얼인 자신의 아들이 적자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남편의 관 앞에서 자결을 하고, 어머니의 희생을 통해 양사언은 본래의 서자 위치에서 적자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설화는 전하고 있다. 책은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양사언 어머니의 자결에서 ‘모성 이데올로기’를 걷어내면 한 여인의 ‘신분 상승’을 위한 욕망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변방의 평민 소녀였던 한 여인이 자신의 집에 우연히 들른 양희수(양사언의 아버지)의 눈에 들어 양반가에 소실로 입성했고, 이후 자결로써 자신의 아들에게는 서얼의 흔적을 지워주고 자신까지 ‘양반의 어머니’로 남으려 했으며, 이는 한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해석이다.



조선 세조 때의 이 씨라는 여인과 사방지라는 사내의 음행은 성적 욕구를 자제하고 정숙한 여인으로 남을 것을 요구받았던 조선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당시 세도가인 이순지의 딸이자 김귀석의 아내인 이 씨는 외간남자 사방지와 정분이 나 사방지를 여장시켜서 곁에 두고 음간을 일삼았다는 얘기다. 이 씨와 사방지의 불륜 스캔들은 야사 뿐 아니라 정사인 ‘세조실록’에까지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외에도 인간 남성을 욕망한 곰 여성이야기, 꿈속의 성교나 귀신과의 교접으로 아들을 낳은 여인들, 정처의 지위를 차지한 첩 등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욕망을 드러내고 야망을 펼쳤지만 음담패설로 소비됐던 상처투성이 여성들의 이야기가 처절하게 그려졌다. 1만5,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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