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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붉은대륙 휘어잡은 마오쩌둥의 '말'

■정치가의 언격-현대사를 바꾼 마오의 88가지 언어 전략

(후쑹타오 지음, 흐름출판 펴냄)

민요형식으로 열여섯글자 배열 맞춰 메시지 쉽게 전달

'종이호랑이' '정풍' 등 정치적 함의 담긴 단어도 만들어

화려한 수사 없는 '마오 어록' 중국인 사상적 교본으로







‘위대한 혁명가’와 ‘간악한 독재자’

중국을 오늘날의 사회주의 국가로 만든 마오쩌둥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대약진운동으로 국토를 황폐하게 했고 문화대혁명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는 여전히 중국의 국부이자 중국인들의 사상을 지배하는 인물로 남아있다.

그가 남긴 어록 역시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마오쩌둥의 글과 강연 등 주요 발언을 간추려 1964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펴냈던 마오쩌둥 어록은 마오쩌둥 개인숭배의 표상이자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극악무도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홍위병들의 사상적 교본으로 통한다.

마오쩌둥 저술 연구자인 후쑹타오는 ‘정치가의 언격’을 통해 “마오쩌둥은 위기의 시기마다 지도자로서의 리더십과 비전을 제시하는 강력한 ‘말’을 제시해 수억의 중국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며 “그의 말은 현재까지도 중국을 이끄는 공고한 사상적 기반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책에서 말하는 ‘언격’은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말의 격’으로 비전을 담은 말을 통해 대중이 스스로 따르게 하는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오는 나름의 언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마오의 말에는 거창한 단어나 유려한 수사가 없다. 5·4운동과 제1차 국공합작, 1만2,500㎞에 달하는 대장정을 승리로 이끌었던 ‘세력 형성기(1917-1936)’부터 변방의 평범한 청년이었던 마오쩌둥은 그 만의 언어지도를 만들어내며 조직은 물론 사상의 기반을 다졌다.

이 시기부터 마오는 민요형식으로 열여섯 글자를 맞추어 배움이 없는 사병들도 쉽게 그의 메시지를 기억하도록 했다. 가령 ‘적진아퇴/적주아요/적피아타/적퇴아추’는 ‘적이 진격하면 우리는 퇴각하고 적이 주둔하면 우리는 교란하고 적이 피로하면 우리는 공격하고 적이 퇴각하면 우리는 추격한다’는 의미로 농민군으로 이뤄진 마오의 군대가 강자를 제압하기 위한 새로운 전술을 담은 일종의 군가였다. 이를 두고 미국의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열여섯 글자의 비결’이 실제로 이전의 승패 표준을 전복시켰고 손자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이래 동방이나 서방에서 제정한 승리와 실패의 표준을 전복시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책에 소개된 88가지 언어 전략 중 대부분은 마오 스스로 창작했지만 고전이나 민간에서 전해지는 과거의 어휘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사례도 꽤 있다. 가령 종이호랑이는 마오가 1946년 미국인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과 인터뷰하며 사용한 단어였다. 이 말은 민간에서 쓰이던 말이지만 마오가 참신한 정치적 함의를 부여해 전 세계에 퍼뜨린 사례로 당시 마오는 미국이 소련에 원자탄을 투하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반동파들을 ‘종이호랑이’에 빗댔고 이 단어는 반세기 넘게 전 세계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1942년 학풍, 당풍, 문풍 등 종파주의를 척결하자는 의미로 내세운 ‘정풍’ 1974년 당내 파벌을 만들었던 장칭, 왕훙원, 장춘차오, 야오원위안을 일컬었던 ‘사인방’부터 ‘자아비평’ ‘꼬리 자르기’ ‘방귀 뀌는 소리(허튼 소리)’ 같은 말들은 국내에서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마오의 말들이다.

언격은 정치지도자의 언어적 능력이자 책임이다. 책의 말미 추천사를 쓴 마오 연구자 천진은 “말은 생각의 물질적 외피이고 영혼의 창이자 사상을 담아 운반하는 저장소”라며 “개개인의 말과 문장의 품격을 통해 그가 가진 사고의 깊이와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천진의 글을 보면 마오는 젊은 시절 국어교과서를 편찬하자고 주장하며 문자학과 언어학 자료를 수집해 연구했다고 한다. 영리한 리더는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국어를 바로잡고 말을 설파하려 했지만 한국의 어리석은 리더는 역사를 바꾸는데 공연한 힘을 썼던 셈이다.

지도자의 말은 늘 대중의 평가를 받는다. 조롱의 의미든 칭송의 의미든 대중을 통해 생명을 얻은 말은 갖가지 의미로 변주되며 생을 이어간다. 대선이 코 앞이다. 과연 우리에게 자신의 사상을 언어로 벼릴 줄 아는 지도자가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비교해봐도 좋겠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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