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통합과 자유주의를 앞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으로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결정 이후 흔들리던 유럽과 국제사회는 일단 한시름을 놓았다. 국제사회는 EU와 세계화에 대한 신임 투표 성격이 짙었던 이번 선거에서 중도 성향의 마크롱이 승리하자 일제히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EU 체제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유권자들을 끌어안기 위해 EU 개혁을 향한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여 유럽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7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후보는 반EU·극우세력에 맞서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모으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마크롱이 승리한 프랑스 대선 결과에 대해 한목소리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장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이날 “프랑스가 유럽의 미래를 선택해 행복하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날 마크롱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 “EU 통합과 개방에 대한 방향성을 지지한다”는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고 총리실 대변인이 전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선택이 EU의 안정 및 현상유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크롱 당선인은 대선전에서 EU 잔류의 조건으로 △위기를 겪는 회원국들을 지원하기 위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공동예산 신설 △유로존 재무장관직 신설 등 개혁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1월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대에서 연설하며 “(EU와) 새로운 협정을 제안하겠다”며 “유로화는 불완전하며 중요한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속하지 못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특히 마크롱 당선인은 다음달 11일과 18일에 열리는 총선을 앞두고 임기 초반 강력한 EU 개혁 카드를 들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의회 기반이 전혀 없는 마크롱 당선인의 ‘앙마르슈(En Marche·전진)’가 국정 장악을 위해 충분한 의석수를 확보하려면 반EU 노선에 지지를 보낸 33.9% 유권자들의 표심을 최대한 다독여야 한다는 과제를 안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는 “EU가 지속 가능한 개혁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결국 프렉시트(프랑스의 EU 탈퇴, Frexit)나 극우정당의 부상을 보게 될 것”이라며 “(당선) 다음날부터 EU와 프랑스 EU 프로젝트의 심도 있는 개혁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행 EU 체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독일과 새로운 지도자를 앞세운 프랑스가 EU의 미래를 두고 물러설 수 없는 기싸움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9월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세금이 다른 국가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독일 납세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CDU)은 마크롱 당선인의 EU 재정개혁 제안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경쟁자이자 EU 의회 의장을 지낸 친EU 성향의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SPD) 대표조차 유권자들의 역풍을 의식해 EU 개혁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프랑스 대선에서 촉발된 EU 개혁 요구가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국제경제 싱크탱크 브뤼겔의 니콜라 버롱 이코노미스트는 “마크롱 당선인의 목표는 재정 공동체 만들기가 아니라 유로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라며 “유로존 공동예산 등의 제안은 초반 판세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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