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은 소비자들이 해상도가 높고 속도가 빠른 기기를 찾게 만들도록 발전한다는 점에서 생산자가 주도하는 시장이지요. VR는 한물간 것이 아니고 이제 뜰 준비가 돼 있습니다.”
세계적 VR기기 제조업체인 오큘러스의 공동창업자 서동일(40·사진) 볼레크리에이티브 대표는 최근 서울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열린 고벤처포럼 강연에서 VR가 급속히 인기가 식어버린 3차원(3D) TV의 전철은 밟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서 대표는 지난 2014년 페이스북이 20억달러에 인수한 VR기기 제조업체 오큘러스의 창업 멤버 8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인수 후 페이스북 자회사의 한국지사장으로 오는 조건으로 5년간 70억원을 받는 옵션이 주어졌지만 그는 70억원의 돈방석을 걷어차고 한국에 VR 게임회사 볼레크리이에티브를 창업했다.
서 대표가 VR 관련 벤처에 재도전한 것은 VR시장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VR시장에 이른바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CPND) 생태계가 이미 구축돼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해외 열기에 비해 국내 VR시장이 주춤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시장을 조급하게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북미에서는 VR·증강현실(AR) 관련 인수합병(M&A)만 23건이 성사됐고 시장조사업체 그린라이트 인사이트의 집계 기준으로 지난해 투자규모가 18억달러로 전년대비 4배 정도 급성장했다.
서 대표는 “하드웨어 VR시장은 삼성·인텔·오큘러스 등 기존의 강자들이 자리 잡고 있어 국내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다”며 “최근 하드웨어보다 콘텐츠 분야에 대한 글로벌 투자가 활발해 창업자들은 이 분야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내 벤처캐피털이 VR 투자를 검토하는 경우는 있지만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극히 드물 정도로 국내 투자가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국내 VR시장의 여건이 만들어질 것으로 낙관하는 서 대표가 단초로 지목하는 곳은 PC방이다. 그는 “PC방 업계가 새로운 사업과 수익 모델을 고민하는데 VR 기기를 도입한다면 해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 등 특정 게임 몇개가 PC방 산업을 크게 부흥시킨 것처럼 VR시장도 킬러 콘텐츠가 나타날 경우 급성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 대표도 5~10분 정도 즐기는 VR게임을 연말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TV의 디스플레이, 처리 속도 수준 등이 이미 최고조에 달해 이 시장에서는 사실상 소비자의 선택 욕구가 거의 사라져버렸다”며 “제조업체들은 아직 높은 사양의 기기가 필요한 VR가 하드웨어 시장에 ‘퀀텀점프’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VR를 파괴적 혁신을 주도할 산업으로 단언했다. 서 대표는 “사용자가 VR로 여행하고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을 주도적으로 제어하고 경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VR의 가장 큰 강점”이라며 “비용 절감으로 생산성 증가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도 경기 침체로 집에서 여가를 보내는 수요층이 점차 커질 것”이라며 “VR는 이제 막 시작하는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