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때마다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속담이 있다. 바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다. 타인에게 서운한 말을 들을 때면 ‘내가 둥글둥글하지 못하고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이라 비난을 받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혀 서글퍼진다. 하지만 이 속담은 ‘모난 돌’의 날카로움을 비난하느라 ‘때리는 정’의 획일화된 폭력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저마다 다르게 생긴 돌들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지 않는 걸까. 세상에 둥글고 매끈한 돌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 ‘모난 돌’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억울하다.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을 어찌하란 말인지. 각지고 움푹 패고 날카롭게 모서리 진 돌 또한 그 자체로 소중하다. 모든 날카로움이 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날카로움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선배의 멋진 조언을 들었다. “가시는 빼고 날은 세워라!”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날카로움과 까칠까칠함의 감미로운 은신처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가시’는 공격을 위한 흉기가 되지만 ‘날’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예컨대 질투나 증오·원한이나 분노는 가시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공격하는 흉기가 된다. 하지만 ‘날’은 요리사가 자신의 칼을 분신처럼 소중하게 갈고 닦듯 반드시 더 날카롭게 벼려야 하는 필수 도구다. 농부가 낫과 호미를 더 단단하게 벼려 이듬해의 농사를 준비하듯이. 가시는 적을 향하지만, 날은 재료를 향한다. 가시는 내가 가만히 있을 때조차도 내게 다가오는 모든 타인을 아프게 찌르는 것이지만 날은 꼭 필요할 때만 적재적소에 힘을 발휘해 목표물을 정확하게 자른다.
우리가 저마다의 가슴 속에 키우고 있는 날카로운 가시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콤플렉스, 나보다 뛰어난 타인을 향한 질투심이나 괜한 부러움, ‘남보다 더 잘 해내야 한다’는 집착과 강박관념. 이 모든 것이 뾰족한 가시가 돼 남들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찌른다. 이런 종류의 가시는 스스로 뽑아내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욱 날카롭게 벼려야 할 ‘날’은 무엇일까. 그것은 저마다의 재능·열정·노력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신념과 철학, 의지와 정의로움 또한 아무리 날카롭게 벼려도 지나치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는 ‘가시’가 되고 또 다른 상황에서는 ‘날’이 되는 존재도 있다. 바로 말하기다. 말하기는 때로는 가시가 돼 남을 찌르고, 때로는 날 선 무기가 돼 목표물을 정확히 맞추기도 한다. 글보다는 말이 가시가 될 확률이 높다. 글은 쓰면서 끊임없이 고칠 수 있고 다 쓰고 나서도 얼마든지 삭제할 수 있어 조절이 가능하지만,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은 한 번 엎질러지면 주워담을 수가 없다. 말을 할 때는 그저 활자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표정과 목소리와 몸짓, 그날의 분위기 전체가 똘똘 뭉쳐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치거나 삭제할 기회가 있는 글에 비해 말 쪽이 더 대형 사고를 칠 확률도 높다.
살아가다 보면 때로 자신의 실력과 재능이라는 ‘무기’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증오나 질투 같은 공격적인 감정이 가시처럼 자라나 상대를 찌르는 ‘흉기’가 돼서는 안 된다. “가시는 빼고 날은 벼려라”는 선배의 조언은 때로는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재능을 발휘하되,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타인을 향한 흉기로 쓰지 말라는 조언처럼 들렸다. ‘날’은 주체할 수 있지만 ‘가시’는 주체할 수 없으므로. 다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으로 되돌아와 그 문장을 가만히 음미해본다. 저마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모난 돌이 ‘개성화’를 가리킨다면, 그 울퉁불퉁한 돌들을 어떻게든 제작자의 의도에 맞게 ‘때리는 정’은 ‘사회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는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 동화되는 ‘사회화’도 필요하지만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찾아가는 ‘개성화’도 절실하다. 사회화는 질서나 제도를 향한 적응의 문제지만, 개성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길을 찾고 나다움을 가꾸고 마침내 진짜 나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모난 돌들이여. 억지로 우리 자신을 동글동글하게 깎아내지 말자. 당신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를. 나의 가파름과 울퉁불퉁함이야말로 ‘나를 끝내 나답게 만드는 그 무엇’이므로.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