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홍석현 미국특사가 17일 출국한 가운데 외교·안보 공식 라인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적 인맥을 병행해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는 맏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모든 부처의 장관(secretary of everything)’이라는 평을 듣는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에게 상당히 의존하고 있어 이들 부부가 북핵·미사일 문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슈 등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어서다. 한미 정상회담이 40일가량 남은 만큼 앞으로 이방카 부부를 초청하고 정상회담 참석을 요청하는 것도 효과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제정치의 대가인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17일 기자와 만나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연합(EU)·독일에 특사를 각각 파견하지만 결국 실타래처럼 얽힌 여러 현안을 풀기 위해서는 워싱턴에 우리의 입장을 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책에서 미국의 베트남전쟁 철수를 들며 ‘전쟁(의 성패)은 워싱턴에서 결정됐다’고 했는데 이방카 부부에 대한 라인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중국은 트럼프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부터 “중국이 우리를 뜯어먹고 있다”며 45%의 관세 부과와 환율조작국 지정 등 위협에 나서자 이방카 부부를 적극 활용했다. 왕이 외교부장의 지시를 받은 추이톈카이 미국대사가 쿠슈너와 접촉했고 이후 쿠슈너의 방중까지 끌어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정상회담(4월6~7일)에서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역할을 확대하는 조건으로 경제보복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쿠슈너는 회담장을 장인 소유인 플로리다 마라라고리조트로 정하고 아내와 함께 정상회담 만찬에 참석했다. 트럼프그룹 부사장 출신인 이방카는 패션·보석 등의 사업가로서 중국 시장을 크게 보고 맏딸도 중국인 유모에게 맡겨 키우며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중국 노래까지 부르게 했다. 장바오후이 홍콩 링난대 정치학과 교수는 당시 CN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트럼프와의 관계 완화를 위해 이방카 부부의 환심을 사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후 이방카에게 패션 브랜드 48건의 상표권을 승인했다. 트럼프 일가는 이해충돌 논란에도 부동산 개발, 거래, 마케팅, 투자, 자산관리, 패션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일본도 이들 부부에 대한 적극적인 로비를 통해 지난해 11월 대선 직후 트럼프 당선인과 아베 신조 총리의 뉴욕회동이나 올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환대를 받으며 통상마찰을 피하고 군사 대국화의 길을 열고 있다. 이방카 부부는 뉴욕회동에도 동석했을 뿐만 아니라 미일 정상회담 과정에서 의제부터 골프 일정까지 실질적으로 조정했다. 유럽에서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여성경제정상회의에 이방카를 초청하는 등 이들 부부에게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재인 정부 출범을 맞아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한국 건너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방카 부부와의 코드 맞추기가 필요하다. 트럼프가 “사드 배치 비용 10억달러를 한국에서 받고 싶고, 한미 FTA도 재협상하고 어려우면 폐기해버릴 것”이라고 위협한 상황에서 산적한 현안과 이슈를 공식 라인과만 협의해서는 효과가 떨어진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에서 3년간 방문연구위원을 했던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21세기 동북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되기를 꿈꾼다면 무엇보다 ‘외교전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그것은 워싱턴과의 외교가 가장 큰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임 명예교수는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으로 의회에서 탄핵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트럼프의 사적 라인에 대한 외교가 긴요하다”며 “홍 특사가 주미대사도 했고 워싱턴에 많은 인적 라인이 있어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사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고,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밝혔고 다음날 미국·중국·일본 정상과 각각 통화했다. 문 대통령은 7월7~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회동하고 중국·일본과도 각각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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