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애플의 부정적 행태가 주목 받고 있다. 하반기에 출시할 아이폰 가격을 갤럭시S8 수준과 맞추기 위해 애플은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갑자기 변경하기도 하고 외주를 줬던 부분을 갑자기 자체 개발로 돌리고 있다. 일례로 애플은 영국에 기반을 둔 그래픽 기술회사 이미지네이션 테크놀로지스에 지난 4월 초 갑자기 거래중단을 통보했고 이 회사는 주가가 70%나 하락하는 비운을 겪은 바 있다. 갑작스러운 계약해지나 거래선 변경이 워낙 잦다 보니 애플의 협력업체에 대한 투자는 ‘러시안룰렛’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이러한 애플의 행태를 누구도 제어하지 않는다. 정글에서 사자가 물소를 사냥하는 것을 규제할 수는 없듯이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갑질 제어’나 ‘동반 성장’을 논하는 것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최근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에 게재된 제임스 글래스먼 전 미국 국무차관의 칼럼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한국 경제와 관련해 삼성의 리더십 위기와 불확실성이 경제의 지속 성장 가능성에 의구심을 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재벌이 한국 경제의 강점 중 하나이며 이를 해체하려는 시도는 현명하지 못하다는 주장을 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재벌정책이 상당 부분 주목을 받고 있다. 새 정부 정책은 주로 재벌개혁과 지배구조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단기적으로는 공정거래위원회 권한과 과징금제도 강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지자체에 공정거래 관련 조직을 도입하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방안도 제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최순실 게이트 이후 급격하게 악화한 여론의 영향을 받은 바 크다.
하지만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 처절한 경쟁체제에 노출된 우리 기업들에 대해 국내에서만 유독 심한 규제를 가하는 것이 이들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엄청난 경제력을 가진 듯 보이는 기업들도 글로벌 수준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수준의 기업에 불과할 수도 있다. 또한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경제를 대표해 경제전쟁을 벌이는 대표선수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를 향한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업들이 바로 이들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정부가 지원과 유도를 하되 결국은 민간이 중심이 돼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산업으로의 진출은 민관합동(Public Private Partnership)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새 정부가 그토록 중요한 어젠다로 제시한 일자리 창출도 결국은 민간이 해야 한다는 점도 주목 대상이다. 정부가 세금을 걷어 만드는 일자리는 범위와 숫자에 한계가 있다. 정부가 감독이나 코치 역할을 잘해야 하는데 선수 역할까지 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기고 경기의 흐름이 끊길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대기업들은 개혁적 관점에서는 규제와 규율의 대상이지만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성공적 대응과 일자리 창출 관점에서는 정부와의 협업 내지 파트너십의 대상이다. 이러한 미묘한 위치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을 토대로 총체적인 접근이 이뤄져야지 어느 한쪽만을 앞세운 ‘조각 그림적’ 접근은 중장기적으로 상당한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기업과의 소통을 유착으로만 인식한다거나 정부가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입하는 적절한 유인체계를 특혜라는 식으로 바라보면 원하는 정책적 효과는 달성되기 매우 힘들다는 점도 잘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최근 국내외 경제상황은 매우 힘들다. 그럴수록 국내 관점과 글로벌 관점, 그리고 개혁대상과 협력대상으로서의 대기업의 위상에 대한 적절한 조화가 절실하다. 보다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대기업 정책이 시행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공적자금관리위 민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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