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4개월이 지나면서 대선과정에서 공약했던 사항들이 속속 정책화되고 있다. 취임 직후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 지우기 차원에서 민주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의료보험체계(오바마케어)를 무력화시키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서명을 공식적으로 취소시켰다. 시리아 등 6개 이슬람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은 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취임 직후 TPP 취소를 공식화하면서 앞으로 미국이 체결하는 무역협정은 미국 노동자의 복지를 개선하며 공정하고(fair) 미국에 이익이 될 수 있게 협상을 추진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에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을 상대국에 돌려 응징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도록 주문함에 따라 미국의 통상당국은 역사상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더구나 취임 100일 되던 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과 한미 FTA를 포함한 미국이 체결한 무역협정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와 협정을 전부 재검토하도록 지시했다. 미국에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재협상이나 협정 취소 엄포를 통해 미국의 국익을 반영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보호무역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국제통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은 무역수지 적자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요약된다. 지난 5월11일자 발간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통상에 대한 논리를 찾기 어렵다. 공정무역(fair trade)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지만 공정무역을 무역수지 제로로 규정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이 700억달러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멕시코와도 무역수지 적자만 해소되면 공정한 무역이 된다는 논리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이 없어 정작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공정하지 못한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취임 후 일련의 조치를 보면 대선과정에서 내세웠던 ‘미국 국익 우선주의’ 정책이 실제 집권하게 되면 국제적 관계를 고려해 순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참히 깨지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에 대해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들은 긴장을 끈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중국·독일 등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수지 적자를 이유로 ‘손을 보겠다’고 별렀던 국가들과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오히려 더 친근한 관계로 진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일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 인터뷰 후반부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상당한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
한 달 후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과연 우리나라도 정상회의 이후 돈독한 한미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한미 FTA 재협상 개시를 통보했다고 몇 번 언급하면서 우리 통상당국을 긴장시키더니 지난 대선 기간 중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청구서를 내밀어 대선에 몰두해 있던 정치권을 뒤집어 놓았다.
협정 발효 23년이 돼 개선이 필요한 나프타와는 달리 한미 FTA는 5년 차 협정으로 오늘날 통상환경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재협상 필요성이 크지 않은 점도 일리가 있으나, 무역수지 적자 해소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 목표이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USTR 부대표로 통상협상으로 이름을 떨치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USTR 대표로 취임함에 따라 광범위한 통상협상을 전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재협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 가지 이슈로 협상하지 않는다. 여러 이슈를 복합적으로 묶어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상대국을 압박해 협상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압박하는 상황을 분석해보면 미중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에 제기했던 상황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한미 정상회의 준비팀은 미중 정상회의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 종합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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