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주무부처 결정이 중요한 시기다. 콘텐츠 주무부처 논의는 향후 한류의 영광과 글로벌 콘텐츠 강국의 위용이 재현되는가, 아니면 그대로 무너지고 말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콘텐츠 주무부처에 대한 논의는 지난 10년간의 적폐에 대한 청산 작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잃어 버린 10년’과 ‘몰락의 10년’에 대한 평가에 기반해야 한다. 콘텐츠의 주무부처에 대한 논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
첫째, 과거 콘텐츠 강국, 한류의 영광을 가능하게 했던 성공 등식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게임이나 드라마, K팝 등 한국의 성공은 바로 콘텐츠와 신기술의 결합, 구체적으로 말하면 콘텐츠와 플랫폼의 결합에 있다. 5년간 무려 28억 뷰를 기록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빼고 말하기 어렵다.
한 때 중국 시장의 70%를 지배한 신화를 세운 한국 온라인게임이나 급속하게 뻗어나가고 있는 웹툰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한국 게임은 일본이 지배하는 콘솔이나 미국이 지배하던 PC게임 시절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혁신적 게임 모델, 즉 온라인게임이라는 서버 기반 게임 모델이 등장하면서 한국은 글로벌 강자로 떠올랐다. 이점에서 향후 한국의 콘텐츠는 철저하게 ICT(정보통신기술)와의 결합에 기반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시장의 관점이다. ICT 기반의 콘텐츠는 ‘본 글로벌(born global)’이다. 본 글로벌이라는 말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글로벌적인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인터넷이나 앱스토어, 구글플레이, 유튜브 등 플랫폼에 기반한 콘텐츠는 서비스를 시작하는 순간 이미 국경 장벽을 넘어 선다.
하지만 지난 10년은 철저하게 글로벌적 관점이 파괴되어 온 과정이었다. 정통부 시절의 ‘아이파크(i-Park)라는 글로벌 진출 거점이 소멸하면서 한국의 콘텐츠는 정부가 아닌 민간의 힘으로 성장해 왔다. 한류의 등장은 정부의 의도적인 정책과 노력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다. ‘겨울 연가’에서 시작된 일본의 한국 드라마 붐은 일본의 드라마 시장 조건에 맞아 떨어진 결과였고 철저하게 민간의 노력에 의해 성취된 결과다.
셋째, 4차산업혁명과의 전면적 결합이다.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는 물론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같은 기술과 결합해야 한다. 이들 기술들은 콘텐츠의 기능과 역할에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 관객은 제작자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단지 소비만 했다면 이제는 단순 소비가 아닌 콘텐츠 생성에 참여하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콘텐츠는 제작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의 게임은 플레이어의 수준에 맞추어 스스로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 역시 관객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스토리 전개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제작 방식과 콘텐츠 구성의 변화는 구래의 콘텐츠 산업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의 원칙에 근거해서 볼 때 기존의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라는 틀로 새로운 콘텐츠 산업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ICT와의 결합이나 글로벌 관점, 4차산업혁명과의 전면적 결합이라는 원칙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또, 문체부는 문화와 체육, 관광이라는 이질적인 기능이 혼재되어 있어 전문성이 약하다. 문체부는 블랙리스트라는 원죄도 가지고 있다. 문화예술을 논하면서 정작 블랙리스트를 통해 창작의 자유를 말살하려 한 점은 콘텐츠 전담부서로서 자격상실이다.
콘텐츠에는 한국 문명사라는 관점도 요구된다. 한국은 오천 년 역사상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 들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지난 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의 진위를 떠나 중국인 일부에 그런 시각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시대적으로는 현재, 그리고 산업적으로 콘텐츠 분야에서는 누구도 ‘한국이 중국의 일부’라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정반대로 ‘지금 중국은 한국 문화권의 일부’다.
콘텐츠 주무부처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이런 역사적 식견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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