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은 문재인 정부에 딜레마다. 과도한 집값 상승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협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참여정부 당시 규제 일변도였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던 학습효과 탓에 새 정부로서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 역시 부담스럽다. 만일 시장이 정상궤도를 이탈할 경우 자율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시장을 안정시켜야 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를 떠안아야 한다.
◇아직은 신중 모드…내각 인선 마무리돼야 방향 잡힐 듯=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 정부는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꾸준히 이어지는데다 강북을 넘어 수도권 일부 지역까지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에는 신중한 분위기다.
현재까지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구두 개입은 가계대출 규제 강화가 유일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으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도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대출 기준을 더 까다롭게, 엄밀하게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단 새 정부가 개별 시장보다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주택 정책을 다루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아직 청와대와 정부에 주택 정책의 컨트롤타워도 채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참여정부 당시 부동산 대책의 산파역을 맡았던 김수현 사회수석은 ‘주택 정책’보다는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도시재생 뉴딜’ 등 주거복지를 담당한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정책실장은 아직 업무 파악 단계인데다 경제수석은 여전히 공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주택 정책은 여러 부처 간 협업이 필요한 만큼 최소한 내각 인선이 완료된 뒤에야 큰 틀의 방향성이 잡힐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 안정’보다는 ‘주거복지’에 기운 정책 무게추=이미 대선 공약에서 나타났듯 새 정부 부동산 정책의 우선순위는 서민주거 안정, 도시재생 활성화다. 특히 새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에 많은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도시재생 뉴딜은 임기 중 매년 10조원씩 총 50조원을 투입해 구도심과 노후주거지 500곳을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미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사업 추진을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했으며 조만간 범정부 태스크포스(TF)도 꾸릴 예정이다. 당분간 시장과는 거리를 두고 주거 복지에 정책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과도한 규제 대신 맞춤형 접근 필요=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 가능성을 무조건 배제하기 힘들다.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지면 정부가 내세운 ‘서민 주거안정’에도 위협이 된다.
실제로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 카드 역시 다양하다. 참여정부 당시 만들어진 규제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지난 9년간 대부분 풀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새 정부의 주택 시장 규제는 정책 수단 자체보다는 그 카드를 꺼내느냐 마느냐 하는 의지의 문제”라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시장이 분화하고 있는 만큼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접근법도 보다 정밀해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위원은 “현재 집값 상승은 서울과 세종시 등 일부 호재가 있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국지적 현상”이라며 “전방위적인 시장 안정책보다는 지역별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통계 고도화 등에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두환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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