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 대통령 특사를 파견했다. 취임 직후 우리 대통령이 한반도 주변 4강 이외 국가에 대통령 특사를 파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아세안과의 관계를 4강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아세안의 중요성과 향후 발전 가능성에 비춰볼 때 매우 시의적절하고 올바른 외교 방향이다. 그러면 아세안과의 협력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아세안에 대한 우리의 정책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간의 단편적 정책에서 벗어나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올해는 아세안 창설 50주년, 아세안+3 20주년,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10주년, 한·아세안 문화교류의 해다. 기념비적인 해인 만큼 우리의 대아세안 전략을 수립하고 천명할 절호의 기회다. 나아가 이러한 장기 비전을 기반으로 구체적 목표가 뚜렷한 중·단기 협력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 중의 하나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디지털 시대의 파트너십이다.
아세안은 디지털 경제블록으로 거듭나려는 야심 찬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세안 정보통신기술(ICT) 마스터플랜’을 통해 오는 2020년까지 디지털화된 공동체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도 디지털산업 육성을 통한 신성장동력 마련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감지해 협력 분야를 발굴해야 한다.
한·아세안센터는 이미 지난해부터 스마트시티, 로봇산업, 전자상거래, 정보기술(IT), 게임 분야에서 무역·투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전통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는 아세안의 관심과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지난주에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 등 아세안 주요국을 한국에 초청해 ICT 투자진흥 세미나를 개최했다. 국내 최대 IT 전시회인 월드IT쇼와 연계해 개최된 세미나에는 아세안의 정부 관료와 기업인이 참여했는데 한국의 첨단기술과 선진 사례를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했다. 아세안에 한국은 세계 수준의 기술력과 발전 경험을 갖춘 최적의 협력 파트너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신정부가 아세안과의 협력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이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아세안의 관심과 수요 변화를 빠르게 파악해 종합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구체적 협력 분야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협력을 통해 한·아세안 관계를 한층 업그레이드할 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