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설렌다. 사람 사는 데 중요한 일부터 챙기겠지, 아이 키우는 일이 정치놀음의 거래 대상이 되지는 않겠지, 경제논리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살리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겠지. 기대 섞인 설렘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게 실현되는 세상이 되겠지.
누구나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놀면서 큰다’ ‘아이들의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건강한 먹거리를 주자’ ‘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일에서 주체가 돼야 한다’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보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고. 너무나 당연한 듯 말하지만 현실은 논쟁의 연속이고 그것의 실현은 뒤로 밀린다.
문재인 정부는 ‘아이들이 행복한 육아’를 말했다.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와 함께한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이 이미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의 성과를 확산시키고 심화한다면 정책목표에 좀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를 뽑아보자.
아이들을 놀게 하자.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 부모의 욕심과 사회 분위기 때문에 한창 뛰어놀 아이들이 영어 단어와 수학 문제를 머릿속에 구겨 넣으면서 살아간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어린이집에서의 과도한 특별활동이 아이들의 ‘놀 권리’를 억압한다고 판단하고 어린이집 특별활동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비용정책을 추진했다. 자치구가 결정하던 기준을 시에서 일괄 결정했다. 세종시와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는 바깥놀이를 할 수 있는 숲유치원이나 유아숲정책을 추진했다. 나아가 동네 숲과 흙 놀이터가 곳곳에 조성돼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마을 모습을 상상한다. 더 나가야 한다.
보육에 공공성이 자리 잡게 하자. 공적 가치가 보육 현장을 주도하려면 국공립 현장의 양적 확대는 필수다. 현재의 핵심은 보육교사에 대한 기준이 바뀌는 것이다. 서울시의 국공립 확충 30% 계획과 보육교사 지원 체계, 초과보육 금지는 이 과정에 있는 정책이다. 모든 보육교사가 신분 안정과 경제적 안정성, 쉼이 있고 협력하는 노동조건, 나아가 재교육을 누릴 시기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부모가 양육의 주체로 살 수 있도록 하자. 그러려면 아이와 함께 놀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운영에도 참여할 시간의 확보, 즉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다. 더불어 경기 성남시와 같이 열린 어린이집 정책을 적극 추진해 어린이집에 대한 부모의 참여가 문화가 되도록 해야 한다.
공동체 관계에서 아이가 클 수 있도록 하자. 부모와 교사들이 운영하는 협동어린이집이나 사회적 경제가 운영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은 함께 아이를 키우며 마을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서울시는 확충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의 일부를 사회적기업이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성남시는 사회적협동조합이 국공립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사례를 늘려가고 있다. 사회적 경제가 갖고 있는 공동체적인 민주적 운영원리에 주목한 것이다.
마을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는 문화와 제도를 만들자. 동네에 아이 키우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거나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이웃의 친구들이 있다면 어떨까.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의 보육반장제도나 공동육아(품앗이) 공동체 지원 사업은 널리 벤치마킹되고 있다.
그동안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이뤄지기 위해 시민과 지자체들이 스스로 바꾸고 제안하고 힘을 모아왔다. 흩어져 일던 작은 물결이 정부가, 국회가, 사회가, 국가가 움직이는 큰 물결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