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현대인은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멀리 난다’식의 격언을 통해 잠은 성공을 방해하는 것, 게으름의 표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러나 잠을 죄악시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사람은 평균적으로 잠자는 데 일생의 약 3분의 1을 보낸다. 그리고 12분의 1은 꿈을 꾸면서 산다. 아침형 인간이든, 올빼미형 인간이든 전체 일생을 두고 잠자는 시간을 비교해본다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잠이 많은 자신을 자책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한국인이 사랑하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위안이 될만한 책을 들고 돌아왔다. 4년만에 국내 출간한 신작 장편소설 ‘잠’(전 2권)에서 베르베르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잠의 세계는 우리가 탐험해야 할 신대륙”이며 “꿈의 세계를 통해 현실 세계의 문제를 얼마든지 풀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캐내서 쓸 수 있는 소중한 보물이 가득 들어 있는 평행 세계”인데도 “무익하다고 오해받는 이 3분의 1의 시간이 마침내 쓸모를 발휘해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가능성을 극대화” 시킬 수만 있다면 인간의 능력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베르베르는 잠의 세계를 자유의지로 운용할 수 있게 된 아들 자크 클라인이 곤경에 빠진 어머니 카롤린 클라인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여정을 그리며 잠의 무한한 가능성을 슬며시 열어준다.
수면의학자인 카롤린은 비밀리에 수면 6단계를 정복하는 프로젝트, 일명 ‘미지의 잠(솜누스 인코그니투스)’을 진행한다. 여기서 수면 6단계는 심장 박동은 느려지고 근육은 이완되지만 뇌 활동은 훨씬 활발해지며,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는 단계다. 그러나 실험 도중 피험자가 사망하면서 카롤린은 궁지에 몰리고 결국 종적을 감춘다. 카롤린이 떠나고 슬픔에 잠긴 28세의 의대생 자크는 꿈속 분홍 모래섬에서, 수면 6단계를 정복하고 자연적인 꿈의 승강기를 타고 온 20년 뒤의 48세 자크를 만나게 된다. 위험에 처한 어머니를 구하러 말레이시아 세노이족을 찾아가라는 48세 자크의 성화에 자크는 ‘꿈의 민족’으로 알려진 세노이족을 찾아 떠나지만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제2의 지구를 찾아 떠나는 인류의 모험을 그린 파피용처럼 베르베르는 인간을 현실 세계의 온갖 제약에서 해방시키고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해줄 미지의 영역으로서 ‘잠’을 재조명한다. 이번 책에서도 과학적 이론과 상상력을 쉬운 문장으로 풀어내는 베르베르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여지없이 발휘된다. 베르베르의 상상 속 잠이 정복된 세계에서는 꿈을 영화처럼 상영할 수 있게 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단잠 자는 방법을 가르치고 대학에서는 꿈꾸는 방법을 가르치게 된다. 꿈이 현실의 평행세계로 활용되며 꿈속에서 공부하고 창작하고 문제의 해답을 찾게 된다.
베르베르는 소설 속에서 잠을 잘 자는 방법 중 하나로 흥미로운 소설 읽기를 꼽았지만 그의 책은 수면을 방해한다. 이 책을 펼쳐 든 독자들은 기발한 상상으로 가득한 2권을 연달아 읽느라, 그리고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기를 기도하느라 밤잠을 설칠 게 분명하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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