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이하 ‘군주’)는 조선 팔도의 물을 사유해 강력한 부와 권력을 얻은 조직 편수회와 맞서 싸우는 왕세자의 의로운 사투와 사랑을 그린 드라마. 엘(김명수)은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신분 때문에 오히려 이것이 짐이 되는 백정의 아들, 천민 이선 역을 맡았다. 천민 이선은 세자 이선(유승호 분) 대신 궐에 들어가 왕 노릇을 하는 인물.
지난 1일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에서 엘은 가면을 쓴 가짜 왕으로서 복합적인 감정을 소화했다. 우선 편수회에게서 “조폐권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짐꽃을 보내지 않겠다”는 압박을 받으며 두려움에 떨었다.
대비에게서는 한가은(김소현 분)을 향한 마음을 담보로 협박 아닌 협박을 받아야만 했다. 두려움에 불안감이 더해졌다. 대비의 청을 거절한다면 한가은을 후궁으로 맞이하기는커녕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떠한 결정도 선뜻 내릴 수 없었다.
이선의 두려움과 불안감 저변에 있는 감정은 무력감이다. 애초 이선은 왕의 자리에 앉은 것부터가 본인의 선택이 아니다. 왕으로서 어떤 권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달라는 한가은의 청에도 이선은 그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이의 원망어린 눈빛에도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왕 역할을 처음 수행하는 이선의 상황은 사극에 처음 도전하는 엘의 그것과 맞아 떨어진다. 한 방송 관계자는 “엘이 위축된 이선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주’를 촬영하며 그가 느꼈을 부담감과 불안감이 이선이라는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 “단 한 순간이어도 좋으니 진짜 왕이고 싶다”고 소망하는 이선에게서 “진짜 배우로 거듭나고 싶다”는 엘의 각오가 들리는 듯하다.
왕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천민 이선으로서 인간적 감정을 드러낼 때는 엘 본연의 매력이 분출된다. 가시방석과도 같은 궐 안의 생활에서도 한가은을 향한 사랑만은 진심이다. 가면을 벗고 “이런 한심한 내가 아가씨를 욕심내도 되겠느냐.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느냐”고 독백할 때, 엘은 왕이 아닌 이선으로 돌아갔다. 트레이드마크인 짙은 눈매에서 애절함이 느껴졌다.
엘은 ‘주군의 태양’의 아역, ‘앙큼한 돌싱녀’의 조연,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주연까지 차곡차곡 올라왔지만 연기력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아이돌로서 커리어와 비교할 때 배우로서 커리어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군주’로 처음 사극에 도전하기에, 우려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걱정 어린 시선을 본인이라고 몰랐을까. 관계자에 따르면 엘은 첫 사극 도전인 만큼 사극 톤에 맞는 발성 연습과 대본 분석에 열중했다고. 여기에 역할과의 동질감까지 더해지니 날이 갈수록 그의 연기가 성장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천민 이선이 이대로 무력감 앞에 굴복하고 말 것인가. 그 미래는 이선의 인물 소개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이선은 천재적인 두뇌를 지녔으며 사랑 때문에 진짜 왕이 되려는 남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행동할 것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선에게 천재성이 있다면 엘에게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다. 배우의 성장은 드라마 속 역할의 성장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감정의 폭발과 자제를 오가는 과정에서 성숙한 연기력을 습득할 수 있는 것. 이선이 진짜 가면의 주인이 되고자 할 때, 엘 역시 진짜 배우로 발돋움 하게 된다.
극의 마지막에 치달을수록 넓은 세상에 눈을 뜨게 될 이선의 모습, 그리고 이선에 몰입하는 동안 보다 깊은 연기 세계에 발을 담글 엘의 성장이 궁금하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