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시내 중심부의 런던 브리지와 인근 버러 마켓에서 3일(현지시간) 차량과 흉기를 이용한 테러가 발생하면서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또다시 테러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CCTV의 전시장’으로 불려온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그것도 지난달 맨체스터 테러 이후 불과 10여일 만에 또다시 ‘소프트타깃(무방비 민간인)’을 겨냥한 올 세 번째 테러가 발생하면서 영국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에 비상등이 켜졌다. 집권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 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가운데 조기 총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발생한 테러로 막판 표심 및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협상에 미칠 파장도 관심을 받고 있다.
이날 BBC 등에 따르면 목격자들은 “범인들이 흰색 헤르츠 렌터카 승합차를 타고 런던 브리지 인근을 시속 50마일(약 80㎞)로 달리던 중 방향을 바꿔 인도를 덮쳤다”며 끔찍했던 현장 모습을 전했다. 특히 범인들은 행인들이 차량 공격에 쓰러지자 긴 칼을 들고 버러 마켓으로 이동해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 공격하는 잔인함을 연출했다. 경찰이 현장을 완전 진압하고 테러 용의자 3명을 사살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8분이었지만 이미 시민 7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부상당한 후였다.
현장에 있던 BBC 기자 홀리 존스는 “범행 차량이 바로 앞에서 방향을 바꾼 뒤 약 5~6명을 쳤다”며 “내 앞에서 두 사람이 쓰러졌고 이후 세 명이 차량에 더 당했다”고 말했다. 버러 마켓 인근 식당에 있던 한 목격자는 “범인 세 명이 식당 안으로 들어와 칼로 사람들의 얼굴과 복부를 찔렀다”며 “이들 세 명 중 한 명이 긴 칼을 들고 있었고 보이는 사람마다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직 이번 사건의 배후를 자처하는 단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번 테러가 이슬람 극단주의에 영감을 받은 자들에 의한 모방 테러임을 시사했다.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 이후 총 12명을 테러 관련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영국 더타임스 일요일판은 테러범 가운데 한 명이 흉기를 들고 경찰에 달려들면서 “이것은 알라를 위한 것”이라고 외쳤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보도하기도 했다.
맨체스터 폭탄테러 이후 10여일 만에 발생한 이번 테러는 메이 총리의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 뒤 최악의 피해를 낸 맨체스터 공연장 테러 이후 테러 위협 수위를 최고단계인 ‘위급’으로 올렸다가 닷새 만인 지난달 27일 ‘심각’으로 한 단계 낮췄다. 특히 이날 테러 수법은 올 3월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과 매우 흡사했다.
외신들은 이번 테러가 오는 8일 시행되는 조기 총선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서베이션의 조사 결과에서는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 격차가 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5월27일~6월1일에 나온 6개 여론조사에서 양당 간 격차는 작게는 3%포인트, 크게는 12%포인트까지 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메이는 총리가 되기 전 6년 동안 내무장관을 맡으면서 영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는 인상을 풍겨 높은 지지율을 얻어왔다”면서 “최근 경찰 예산을 삭감한데다 올 들어서만 세 차례 테러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야당의 비판이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테러의 양상이 극히 잔혹한 점 등을 들어 영국의 ‘샤이 보수’가 집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메이 총리는 “지금까지로 충분하다”면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경찰과 정보당국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8일 총선은 예정대로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며 대테러 경보단계는 격상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메이 총리가 압도적 과반을 얻지 못할 경우 그가 던진 조기 총선 승부수 자체가 실패로 귀결되며 총리의 입지가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브렉시트 협상과 유럽연합(EU) 등의 국제정세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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