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전국을 휩쓸었던 고병원성 조류인풀루엔자(AI) 악몽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두 달 만에 발생한 AI 의심 사례의 초기 대처가 늦어진 탓이다. 사례 유례없는 가뭄으로 농심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가운데 AI 악몽 우려까지 겹치면서 농민들의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
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7마리 규모의 작은 토종닭 농가에서 AI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농가의 농장주는 신고 엿새 전인 지난달 27일 도내 오일장에서 오골계 5마리를 샀다. 오골계는 이틀 뒤인 29일부터 30일 사이에 전부 폐사했다. 당시 농장주는 이 사실을 당국에 즉각 알리지 않았다. AI라고 의심하지 못했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신고는 지난 2일 기존에 있던 토종닭 3마리가 추가로 폐사하고 나서야 이뤄졌다. 고병원성 확진은 아직이다. H5N8형 AI는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처음 폐사한 오골계는 이번 사태의 ‘진원지’로 알려진 군산 종계 농장에서 제주로 건너온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농장주가 의심 신고를 하기 전까지 최소 6일 동안 AI 바이러스가 방치됐다는 점이다. 군산 종계 농장에서는 제주 외에도 부산과 경기 파주, 경남 양산 등으로 모두 3,000마리의 오골계가 유통됐다.
이번에 발생한 AI 바이러스는 유입 경로가 명확하지 않다. 추운 날씨를 좋아하는 바이러스 특성상 여름철에는 잘 목격되지 않는다. 더욱이 군산 종계농장은 지난 3월 중순, 한 차례 받은 AI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당국은 군산 종계농장이 주로 중·소규모 농가와 거래를 해온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소규모 농가의 경우 바이러스가 닭이나 오리 체내에 장기간 머물다 다른 가금으로 옮기는 ‘순환 감염’이 종종 발생한다. 군산 농장주가 순환 감염이 발생한 소규모 농장과 거래하다 역으로 감염됐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급한 것은 AI의 재확산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군산 농장에서 유통이 이뤄진 지역은 부산·파주·양산·제주 등 최소 4개 지역. 다른 지역으로 유통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제주에서 검출된 H5N8형 AI는 잠복기가 긴 것으로 알려져 언제, 어디서 AI 의심 사례가 나올지 예상하기 힘들다. 실제 부산 기장군에 있는 농가에서도 4일에서야 AI 양성반응이 나왔다. 해당 농장주 역시 지난달 27일 군산 종계농장에서 약 650마리의 오골계를 사온 것으로 밝혀졌다.
농식품부는 제주나 군산, 부산 등의 농장에서 고병원성 확진 판정이 나오는 즉시 AI 위기 경보단계를 가장 높은 ‘심각’으로 올릴 예정이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과 이준원 차관 등 당국 관계자들은 4일 제주·군산·파주·양산에서 방역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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