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지원 확대 대책을 검토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정부의 피해자 구제 절차가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 질환 인정 범위도 폐 이외의 다른 장기 등으로 보다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5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 발생 이후 지금까지 피해를 당했다고 정부에 피해 보상을 신청한 사람은 총 5,584명이다. 이 가운데 1~2단계(가능성 거의 확실 또는 가능성 높음)로 인정돼 구제받은 피해자는 280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그동안 3~4단계(가능성 낮음 또는 가능성 거의 없음) 피해자에게는 이렇다 할 보상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정부는 올 4월에야 뒤늦게 3~4단계도 피해자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따라 오는 8월부터는 그동안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3~4단계 환자도 구제계정운용위원회 심의를 통해 특별구제계정으로부터 구제급여에 상당한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해까지의 신청자는 연내, 올해 신청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피해 조사·판정을 완료할 계획이었는데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다”며 “아무래도 폐 이외에 다른 장기의 질환 판정 기준 마련 작업도 빨라질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피해 구제 절차에 속도를 내더라도 실제 구제 작업이 빨리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숨어 있는 피해자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환경부 연구용역 조사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40만~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피해 질환 인정 범위는 보다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부는 그동안 폐 이외 질환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정하지 않다 올 들어 3월에야 산모의 유산·사산·조산 등에 따른 태아 피해 인정기준을 마련했다. 많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천식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아직 천식에 대해서는 판정기준안조차 확정 짓지 못한 상태다. 환경부는 현재 천식의 피해판정 기준안과 관련해 전문가 의견수렴 절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비염 등에 대한 판정기준안은 이 단계까지 이르지도 못했다.
관련업체들은 대통령의 가습기 살균제 사과 발언 검토 소식이 알려지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아직 손해배상소송과 보상 문제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문 대통령의 사과 발언의 수위 및 내용에 따라 기업들의 책임 범위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된 주요 기업은 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애경 등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아직 사과 내용이 나오지 않아 입장을 밝히기가 조심스럽다”며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정부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관련부서 직원들이 하루 종일 정부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관련 소송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막기 위한 재발방지 법안으로 올해 초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로 불리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 법안은 제조물 결함으로 사용자가 신체에 손해를 입으면 제조업자가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가습기 살균제 관련 사과 발언 수위 및 내용에 따라 업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더 크게 불어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세종=임지훈기자 박윤선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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