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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루’, 50번 깨어나게 만든 감성 타임루프

시간의 변주는 다양한 서사를 가능케 한다. 타임워프, 타임리프, 타임루프 등 시간을 왜곡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어왔다.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에서는 그 중 타임루프(인물이 동일한 시간을 반복하는 것)를 이용해 반복되는 하루를 창조했다.

시간여행은 다양한 작품에서 사용되면서 신선함과 거리가 멀어진 소재다. ‘하루’ 역시 그 부분에서 식상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조선호 감독은 공간과 시간이 반복되더라도 매 장면이 새로운 순간의 연속이 되도록 연출의 디테일을 살렸다. 배우 김명민과 변요한은 시간의 반복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농도 깊은 감정을 능숙히 소화해냈다.

‘하루’ 스틸컷/사진=CGV아트하우스




전쟁의 성자라 불리는 의사 준영(김명민)은 딸 은정(조은형)의 생일날 약속 장소로 향한다. 그러던 중 사거리 교통사고 현장에서 죽어있는 딸을 발견한다. 충격도 잠시, 시야는 암전되고 준영은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다시 눈을 뜬다. 사고 2시간 전이다. 어떻게 해서든 사고를 막으려 하지만 딸의 죽음은 몇 번이나 되풀이 된다.

셀 수 없을 만큼의 좌절을 겪던 준영. 그의 앞에 사설구급대원 민철(변요한)이 등장한다. 민철은 다짜고짜 준영의 멱살을 잡고 “당신도 하루가 반복 되냐”며 울부짖는다. 은정을 치고 간 택시 속 죽어있던 여자가 민철의 아내였던 것. 여기에 사고 택시를 운전했던 택시기사까지 포함해 다섯 명의 기묘한 운명이 맞물리기 시작한다.

타임루프는 영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먼저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장르적 재미를 만들어낸다. 영화 초반, 주인공들은 하루가 반복되는 이유보다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추적하는데 집중한다. 주인공이 사고를 막기 위해 이전과 다른 행동을 선택하면 또 다른 변수가 생기고 긴장은 고조된다. 타임루프로 그려낸 세계의 촘촘한 연결고리가 돋보이는 지점.

강식(유재명)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흐름은 전환된다. 그전까지 타임루프 속 인물들의 행동으로 장르적 특성을 과시했다면, 후반부에는 인물이 표현하는 감정에 포커스를 둔다. 세 남자의 사연은 결국 ‘왜 하루가 반복되는가’로 회귀한다. 혼재된 이들의 몸부림은 구슬프고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변해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다. 절대적인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어지는 순간, 인간관계의 본질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장르적 재미를 떠나, 타임루프이기에 가능한 감정의 깊이가 있다. 사람은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행동하기를 포기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살릴 방법이 없는데 헛된 노력을 반복하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준영과 민철은 다르다. 몇 분만, 아니 몇 초만 빠르면 딸과 아내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 점이 이들의 감정을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다.



장르적 재미와 감성적 교감, 두 가지를 모두 완성할 수 있던 데는 배우들의 연기가 아주 큰 몫을 했다. 김명민과 변요한은 촬영 내내 자신들을 몰아붙였다. 김명민은 비행기 안에서, 변요한은 침대에서 50번 넘게 새로 깨어났다. 가장 더운 한낮의 여름, 인천 박문여고 사거리에서 수도 없는 사고를 목격하고 또 겪어야 했다.

김명민과 변요한은 관객들을 그 날의 박문여고 사거리로 이끈다. 사고를 다시 겪는 순간순간 마다 섬세하면서도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두터운 감정을 쌓았다. 택시의 핸들을 돌리려는 절박함, 사고 직전 아이를 감싸려는 부성애, 사랑하는 이가 목숨을 위협받을 때 차오르는 분노, 그리고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원망과 죄책감까지 함께 느끼게 했다.

김명민은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대작들의 틈새를 파고들고 싶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미이라’, ‘원더우먼’ 등 할리우드 대작과 비교해 영화의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루’가 스릴러물로서 겹겹이 쌓아올린 긴장감과 그 안에서 피어난 본질적인 감정의 교류는 결코 작지 않은 파동을 일으킨다. 오는 15일 개봉.

‘하루’ 스틸컷/사진=CGV아트하우스


‘하루’ 스틸컷/사진=CGV아트하우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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