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과 8일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이하 ‘군주’)에서는 저마다 다른 목표를 가지고 궁으로 모인 네 남녀의 사연이 그려졌다. ‘군주’는 총 40부작으로 기획된 드라마. 8일 방송분까지 정확히 20회의 이야기가 마무리 됐다. 드라마가 중반부를 지나감에 따라, 네 사람의 성격은 물론 각각 맺는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먼저 화군(윤소희 분)은 대목(허준호 분)을 찾아가 천수(세자 이선, 유승호 분)에 대한 마음을 고백했다. 만약 그를 해친다면 자신도 자결할 것이라며 거래를 텄다. 화군은 대목에게 대편수가 자리를 얻어내 본격적으로 편수회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세자와 가은(김소현 분)의 사이를 알면서도 결국 세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권력이라고 되뇌었다.
가은 역시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다. 대비의 제안에 따라 궁녀가 돼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천수와 이별해야 하는 길일지라도, 편수회와 손잡은 주상을 폐위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궁에 들어갔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생명이 아닌 정의를 지키겠다며 굳센 의지를 다졌다.
이를 알게 된 세자는 가은을 빼내기 위해 궁으로 향하려 했다. 우보(박철민 분)는 섣불리 움직였다가 위험해진다며 우선 왕의 자리에 앉아있는 이선(엘 분)을 만나 도움을 청하라 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5년 만에 재회했다. 세자가 보부상 두령의 신분으로 궁에 입궐한 것. 세자는 이선에게 “무지개가 드리워 대궐 담 안으로 들어갔는데 보셨냐”며 가은을 빗대어 표현 했다.
그러나 이선은 이를 모른 척했다. 무지개를 보지 못했다며 흔들리는 눈빛을 감췄다. 세자만큼이나 가은에 대한 애정이 커진 이선이다. 그는 세자에게 “그대가 부럽다. 과인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시선이 있어 단 한순간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며 궁궐에서의 힘든 시간을 토로했다. 세자와 이선의 복잡 미묘한 감정이 불편한 공기 위를 부유했다.
드디어 궁에서 만나게 된 가은과 세자. 세자는 가은에게 “네 마음속에 아직 내가 있다는 한 마디만 해주면 이 상황을 돌이키겠다”고 말했지만 가은은 눈물을 감추며 애써 외면했다. 이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이선은 두 사람의 관계에 분노했다. 당장 대비(김선경 분)에게 찾아가 가은을 자신의 후궁으로 만들어달라며 불안한 마음을 표출했다.
세자와 가은의 마음은 이미 통했다. 그러나 더 큰 가치,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택해야 했다. 이 사이에서 새로운 변수가 된 것이 이선과 화군이다. 각각 가은과 세자에 대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을 암시하듯 열망 어린 눈동자를 번뜩였다.
이는 배우들의 연기와도 궤를 같이 했다. 유승호와 김소현은 곧은 눈빛, 단단한 어조로 올곧은 신념을 표현했다. 이에 반해 엘과 윤소희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선, 높낮이의 폭이 큰 목소리로 휘몰아치는 갈망을 드러냈다. 이처럼 네 사람은 비슷한 듯 다른 갈래의 감정을 나눠가졌다. 여기에 각자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표현력으로 인물의 심경을 전달했다.
이와 함께 궁궐 안 정치세력의 향방도 거센 물결을 탔다. 세자의 정보통이었던 매창(이채영 분)이 선왕(김명수 분)부터 이선까지 모시고 있는 상선과 연관 있음이 드러났다. 매창이 세자를 보위에 올리자고 했으나 상선은 “세자와 대비, 편수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마라. 우리에게 왕이란 없다”며 철저한 중립을 고집했다.
세자 측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세자는 우선 조정에서 자신을 도와줄 충신들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앞서 이판으로 복귀한 우보가 중심에 섰다. 이윽고 병권을 쥐고 있는 최헌 장군까지 세자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는 자신의 무력을 이용해 진짜 세자를 보위에 앉히자고 주장했으나 우보가 이를 막아섰다.
최헌과 우보는 팽팽했다. 최헌은 “지금이라면 국경의 기병을 움직일 수 있다. 현재 보위에 앉은 이를 끌어내리자”고 소리쳤고 우보는 “내전을 일으켜 백성들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 백성을 살리고 편수회를 치기 위해 저하의 일생을 걸어야 한다”고 인내를 요구했다. 세자는 그간 자신의 노릇을 해준 이선에게 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상태. 그럼에도 가은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고 싶은 심정이 은연중에 드러났다.
엔딩에서 유승호는 어느 때보다 결연한 눈빛을 보였다. 다음 회까지 그의 결정은 유보됐지만 어떤 선택이든 궁 안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예고에서 이선은 세자에게 “보위는 돌려 드리겠지만 가은 아가씨는 제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두 사람이 하나의 왕좌, 하나의 사랑을 두고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돌변할 것임을 예고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네 사람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극 중 인물들의 감정을 기반으로 한 개연성, 그리고 이것을 끌고 가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여느 때보다 큰 폭으로 감정이 움직이는 만큼, 조그마한 변수에도 감정은 큰 각도로 널뛴다. 배우들에게 더욱 세심한 표현력이 요구되는 것.
네 남녀가 그리는 러브라인 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른 시점이다. ‘군주’가 다양한 계층에게 두루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권력을 모두 견제하려는 이, 급진적으로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이, 당분간의 희생을 버티며 승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이까지. 다채로운 역할 설정을 통해 현실 정치의 초상을 드라마에 녹여냈다.
현재까지 동시간대 1위를 사수하며 수목극 왕좌를 지키고 있는 ‘군주’다. 40회 중 절반에서 맞닥뜨린 격변기를 도움닫기 삼아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