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차원 뮤지컬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을 원작으로 배우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격이나 말투를 충실히 재현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의미합니다. 이 말이 일본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께. 같은 해 일본 2.5차원뮤지컬협회가 설립되면서 더욱 대중화됩니다. 요즘도 일본 공연계 트렌드를 소개하는 기사에 ‘2.5차원 뮤지컬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일부 기사에선 지금이 진정한 2.5차원 뮤지컬의 전성기라고도 합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2.5차원 뮤지컬의 역사는 1966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찍이 만화 산업이 발달한 나라답게 만화의 흥행을 바탕으로 무대화에 나선 사례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지요. 1974년에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가 뮤지컬로 제작됐고 뮤지컬 ‘소공녀 세라’가 1985년 제작되며 인기를 끕니다. 물론 이때까지는 10대가 주로 즐기는 장르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후 2.5차원 뮤지컬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은 ‘테니스의 왕자’와 ‘세일러문’ ‘나루토’입니다. 이 작품들의 특징을 보면 우선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출연 캐릭터가 많습니다. 각각의 캐릭터는 개성이 뚜렷해 캐릭터별로 고정팬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가령 지난 3월 국내에서도 뮤지컬로 만들어진 만화 ‘꽃보다 남자’를 보면 4명의 남자 주인공(F4)이 모두 개성이 다르고 각기 다른 팬층을 보유하고 있죠. 이는 아이돌 그룹이나 걸 그룹 멤버 수가 늘어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러 명의 멤버 중 한 명만 좋아해도 팬들은 음반이나 굿즈, 콘서트 티켓을 사는데 기꺼이 지갑을 여니까요.
2.5차원 뮤지컬은 산업적 측면에서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만화와 영상 판매는 물론 관련 MD상품 제작을 통한 수익 다각화, 패키지 판매까지 연결할 수 있죠.
게다가 2.5차원 뮤지컬은 최근 국내 공연업계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스타마케팅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주연급 배우 개런티 문제와 이에 따른 양극화 문제는 일본에서도 오랜 논쟁거리였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스타마케팅으로 공연 제작비가 높아지는 문제를 탈피하기 위해 캐릭터 지명도가 높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요즘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신조어 중에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라는 말이 있죠. 지명도가 높은 캐릭터를 재현할 때는 스타보다는 해당 캐릭터를 가장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 일명 ‘만찢남’이나 ‘만찢녀’를 캐스팅하는 것이 현명하겠죠. 캐릭터 유사성이 높다면 신인들도 얼마든지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는 주연 자리를 꿰찰 수 있게 된 것이죠.
원천 콘텐츠 팬을 공연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입니다. 만화책이나 2차원의 만화영화를 즐기던 팬들이라도 해당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공연장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일본에서는 2.5차원 뮤지컬의 성공을 통해 원작이 다시 인기를 얻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령 ‘테니스의 왕자’는 2008년 원작 연재가 끝났지만 2015년 후쿠오카 카나루시티 극장에서 상연된 이후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나루토’는 2015년 도쿄 시부야에 2.5차원 뮤지컬 전용 극장 ‘아이아 2.5 시어터 도큐’ 오픈을 계기로 이곳에서 장기 상연하고 있고 지난해 11월에는 말레이시아 현지 공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일본 내에서 2.5차원 뮤지컬에 대한 전망이 밝은 이유는 10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만화, 애니메이션 마니아층이 20~30대로 확장되면서 이들이 공연장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구매력을 갖춘 관객층이 유입되면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2.5차원 뮤지컬 입장권의 상한선이 3,500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8,000엔 이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일본은 2.5차원 뮤지컬을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문화 콘텐츠로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나루토’의 예처럼 해외 수출에도 활발하게 나서고 있는데요. 가령 말레이시아에서 나루토를 공연하던 당시 만화페스티벌을 동시에 열어 뮤지컬과 만화, 관련 상품을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시너지효과를 냈다고 합니다. 올해도 중국 상하이(뮤지컬 ‘도검난무-막말천랑전’), 한국(‘데스노트’) 등에서 2.5차원 뮤지컬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고요.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2.5차원 뮤지컬이 속속 막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2.5차원 뮤지컬 보다는 웹툰컬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는데요. 순수 국내산 웹툰컬의 탄생은 지난해 초연한 서울예술단의 ‘신과함께’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뮤지컬 ‘영웅’, ‘명성황후’ 등으로 유명한 에이콤이 인기 웹툰 ‘찌질의 역사’를 무대로 옮겨오기도 했죠.
총 세 편의 작품이 개막하는 이달은 그야말로 웹툰 컬의 풍년입니다.
지난 3일 개막한 ‘찌질의 역사’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등 방송을 통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풍 작가가 글을 쓰고 심윤수 작가가 그린 웹툰으로 열성 팬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20대에 막 접어든 청춘들의 찌질한 연애담을 적나라하게 그려 20대는 물론 30~40대 사이에서도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죠. 특히 이 작품의 주인공 서민기 역은 물 없이 고구마를 먹은 듯 속을 답답하게 하는 ‘발암캐릭터’로 꼽히며 널리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 공연에서 박시환, 박정원, 강영석 등 세 배우가 원작 캐릭터를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재현해 눈길을 끕니다.
2015년 초연 당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웹툰 뮤지컬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한 서울예술단의 ‘신과 함께 저승편’도 오는 30일 2년 만에 앙코르 무대를 올립니다. ‘신과 함께_저승편’은 인기 웹툰 작가 주호민 작가의 동명 작품을 무대화한 작품인데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이끄는 저승사자와 염라대왕 등 민속 신들의 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뮤지컬에서는 저승의 국선 변호사 ‘진기한’이 평범하게 살다 죽은 소시민 ‘김자홍’을 변호하는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화려한 무대를 보여줍니다. 김다현·박영수(진기한), 김도빈(김자홍), 송용진(강림) 등이 원작 캐릭터와 흡사한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배우로 꼽히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대학로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위대한 캣츠비’ 역시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강도하의 웹툰 ‘위대한 캣츠비’는 여자친구 ‘페르수’에게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은 무능력한 남자 캣츠비와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선’, 청춘들의 비극과 고뇌의 출발점인 ‘하운두’ 등을 중심으로 20대의 고뇌, 사랑에 대한 미련을 그린 작품입니다.
원작을 통해 검증된 이야기의 힘, 다양한 소재, 독자층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웹툰 컬은 국내 뮤지컬 시장의 주요 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중심의 웹툰 시장 활성화에 이어 레진코믹스 등 다양한 웹툰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웹툰 콘텐츠는 물론 이를 즐기는 독자층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구매력을 갖춘 30~40대가 즐길만한 웹툰이 많아질수록 이를 무대화한 뮤지컬의 등장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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