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국가에 출장이나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흔히 듣는 얘기가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살인적인 교통체증 때문에 공항에서 시내까지 20㎞ 거리를 가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거나 인구 1,000만의 베트남 호치민시에 지하철도 없이 버스와 오토바이만으로 출퇴근하는 인파에 갇혀 오도 가도 못했다는 종류의 에피소드 말이다. 요즘 동남아 국가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낙후된 교통 인프라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글로벌 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 주요국의 인프라 수준은 7점 만점에 3~4점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가 6점 정도라고 하니 상대적으로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급격한 경제와 산업발전으로 도시개발이 가속화되고 더 많은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고 있지만 도로나 대중교통·전력·상수도 등 인프라 개발이 더디게 진행되며 문제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그만큼 풍부한 개발 잠재력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동남아 주요국의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평균을 훨씬 넘어서는 5~6% 수준이어서 개발을 추진하기 위한 체력은 탄탄하게 다져져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 투자 유치와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인프라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을 각국 정부에서도 잘 알다 보니 실제로 대규모의 프로젝트 발주도 줄지어 예고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전력·교통·수자원 인프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74조원 규모의 우선개발 인프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베트남은 480억달러 규모의 철도, 대도시 메트로 등 교통 인프라 개발 계획을 수립해놓고 있다. 또 필리핀은 최근 총 710억달러 규모의 3개년 인프라 건설계획을 발표하며 인프라 투자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프라 부문의 많은 기회가 아시아 시장에 열려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개발수요가 풍부한 아시아 시장에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새 정부도 아세안 국가에 특사를 파견하며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해외 건설 지원기구 설치를 입법화하는 등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출입은행도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 등을 핵심전략국가로 선정해서 신시장 개척단을 통해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인프라 수주 금융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아시아 인프라 시장에 대한 투자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과거 로마에서는 도로·수도와 같은 인프라 건설을 일컬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대사업’이라 했다고 한다.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동하고 전기 걱정 없이 공장을 운영하고 깨끗한 물을 쓰는 사람다운 일상을 영위하는 데 우리 기업이 앞장선다는 보람까지 덤으로 따라오니 더욱 좋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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