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대표적 유럽연합(EU) 잔류파인 데미언 그린 고용연금장관을 부총리 격인 국무조정실장에 임명하며 지난 총선에서 과반의석 달성에 실패한 보수당이 당내에서 고조되는 ‘하드 브렉시트(EU와의 완전한 결별, Hard Brexit)’ 수정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이 총리가 11일(현지시간) 단행한 개각에서 그린 장관을 국무조정실장에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국무조정실장은 법적으로 필수 임명직이 아닌 부총리를 대신하는 직책으로 장관들의 선임 역할을 한다. 그린 장관은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국민투표를 앞두고 메이 총리와 함께 EU 잔류를 촉구했던 보수당 내 대표적 ‘잔류파’ 의원으로 1997년 이후 의원직을 유지해온 보수당 내 ‘원로’ 인사다.
현지 언론들은 그린 장관에 대한 인사 결정이 “보수당 내 친 EU 의원들을 다독이려는 메이 총리의 강한 의사표시”라며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메이 총리가 ‘하드 브렉시트’ 노선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보수당 내에서 제기되는 ‘소프트 브렉시트’ 요구에 대응해 총리직 사퇴론을 정면 돌파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다만 메이 총리는 이번 개각에서 강경 탈퇴파인 마이클 고브 전 법무장관도 내각에 복귀시켜 섣부른 브렉시트 기조 변화 관측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고브 전 장관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선거운동 당시 “EU의 규제가 매주 영국 경제에 6억파운드(약 1조원)의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는 논리를 편 인물이다. 이언 스미스 보수당 의원은 “고브는 우리의 국경과 법·재산을 지키는 데 뚜렷한 주관을 가진 인물”이라며 “브렉시트에 물타기는 없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메이 총리가 개각으로 보수당 내 EU 잔류파와 탈퇴파 모두를 아우르겠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지만 여론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는 9~10일 영국인 1,7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8%가 메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고 이날 발표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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